장희진은 12년이라는 긴 연기 생활을 했지만 아직 대표작이 없다. 초조했지만 느린 게 나쁘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조금씩 성장하길” 기대했다. 사진제공|더좋은이엔티
■ ‘마을’ 이복자매 문근영·장희진의 새로운 발견
‘재발견’과 ‘발견’. 연기자 문근영(29)과 장희진(32)에게 최근 종영한 SBS 수목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마을)은 특별하다. 극중 이복자매로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한때 극심한 부침을 겪은 후 이번 드라마로 새롭게 ‘태어’났다. 문근영은 그동안 주연의 길을 걸어오다 힘을 빼고 다른 인물을 든든히 받쳐주었다. 장희진은 주연으로 우뚝 서는 발판을 마련했다. “지독한 20대”를 보낸 두 사람은 그동안 남들의 시선에 자신을 옭아매기 바빴지만, 이제는 “부질없다”며 마음을 비웠다. 그랬더니 ‘복’이 굴러들어왔다.
조연에서 주연으로 날아오른 장희진
주연으로 데뷔 후 12년간 조연…
‘천천히 성장하자’며 스스로 응원
‘마을’ 놓쳤다면 억울했을거예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라 더욱 값지다. 처음엔 그저 조연 가운데 한 명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장희진은 예상을 깨고, 강렬한 존재감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이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았더라면 억울해서 잠도 못 잤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행복감에 빠져 있다.
“패션잡지 모델로 활동한 것까지 따지면 2000년부터다. 10년을 넘게 한 번도 쉬지 않고 매년 꾸준히 작품에 출연해왔지만, 내가 보이지 않았다. 남들보다 뭐든 느린 편이다. 느린 게 나쁜 건 아니니 천천히 조금씩 성장해가자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다. 모델로 활동할 당시 전지현을 닮은 외모로 눈길을 끌었던 그는 CF는 물론 각종 패션잡지의 표지를 독차지했다. 곧바로 시작한 드라마에서도 주연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게 전부였다. 그도 “20대엔 정말 초조했다. 한 번 주목을 받으니 발돋움해서 더 위로 올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일이 더 풀리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대신 긴 시간 욕심을 버리는 습관을 들였다. “자존심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그럴수록 마음을 비우는 데 집중했다. 그랬더니 기대하지 않았던 행운이 들어왔다. 촬영 분량이나 극중 비중 등이 전작인 MBC 사극 ‘밤을 걷는 선비’보다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적었지만, 그는 흔쾌히 “출연하겠다”고 했다.
“1∼4회까지 대본을 봤을 때 캐릭터가 정말 미비했다. PD도 끝까지 분량을 확보해줄 수 없다고 얘기했다. 다른 건 다 신경 쓰지 않고, 이 일을 당당하게 하고 있다는 자존감 하나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동료관계를 뛰어넘었다. 가장 친한 이들이다. (이)보영 언니와 지성 오빠의 모습을 보면 부럽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남의 애인을 빼앗고 갈라놓는 캐릭터만 연기해왔는데, 이젠 짝사랑 역할도 그만해야겠다. 외롭다. 하하!”
그러면서 그는 동시간대 경쟁작이었던 MBC ‘그녀는 예뻤다’ 속 황정음이 연기한 김혜진 캐릭터가 가장 부러웠다면서 “나도 극중 김혜진이었는데 어쩜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지, 분량은 적어도 정말 밝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며 웃었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