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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휠체어 삶, 꿈마저 잃지 않게…

입력 | 2015-12-15 03:00:00

[복지사각 위기의 가정에 ‘희망의 손길’을]<5·끝>절망 딛고 재활 나선 정해성씨
공사장 추락사고로 하반신 마비에 합병증까지




8일 경기 부천의 한 병원에서 정해성(가명) 씨가 치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1월 추락사고로 중상을 입은 정 씨는 내년 1월 휴업급여가 중단되면 생계가 막막해진다. 그러나 정 씨는 아들과 어머니 등 가족을 위해 다시 일어서겠다는 재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부천=김영국 동아닷컴 객원기자 press82@donga.com

“‘아빠! 친구들 가운데 저만 자전거를 못 타요’라는 아들(초등 3학년)의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합니다. 사고만 당하지 않았어도 자전거 타는 방법을 알려줬을 텐데….”

8일 경기 부천시의 한 병원에서 만난 정해성(가명·46·인천 남동구) 씨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그는 지난해 인천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추락해 중상을 입었다. 상처는 아물었지만 각종 합병증으로 지금도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다. 아픈 몸도 걱정이지만 정 씨의 마음을 짓누르는 더 큰 짐이 있다. 매달 140만 원가량 받던 휴업급여 지급이 올해 말로 끝나기 때문이다. 생계를 꾸려온 유일한 수단이 사라지는 것이다.

정 씨는 과거 서울의 유명 사립고교 영어교사로 일했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그에게 갑자기 불행이 찾아왔다. 정 씨의 부모가 모두 암에 걸린 것이다.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그는 교사를 그만뒀다. 조금 더 돈벌이가 좋은 입시학원 영어교사를 선택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직접 영어학원을 차렸지만 실패해 빚더미에 앉는 신세가 됐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국 아내와도 이혼했다.

하지만 그는 노부모와 어린 아들을 위해 다시 일어섰다. 산업안전관리기사 자격증을 취득해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힘들어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던 중 지난해 1월 10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인천의 한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척추디스크 손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입었다. 정 씨를 간호하던 아버지는 하반신이 마비된 아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결국 세상을 떠났다.

수술 뒤 찾아 온 후유증은 더욱 심했다. 염증 수치가 올라가고 왼쪽 다리가 코끼리 다리처럼 부풀어 올랐다. 2014년 9월 2차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몸은 나아지지 않았다. 발목과 발가락이 아예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올 8월 3차 수술대에 올랐다. 그러나 수술 부작용으로 왼쪽 다리 전체가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이란 병을 얻게 됐다. 진료를 맡은 의사가 그에게 “애를 낳는 고통보다 더 극심한 통증을 느낄 것”이라고 설명할 정도로 심각했다.

재활치료를 위해 근로복지공단 인천병원에 입원했지만 이번에는 ‘심부정맥혈전증’이라는 합병증이 생겼다. 특히 이 병이 산업재해와 무관하다는 판정 탓에 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다행히 지인의 도움으로 부천 세종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됐다. 또 인천 남동구 논현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위기가정 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의료비도 지원받았다.

하지만 사고로 일을 못하면서 지급되던 휴업급여가 올해 말이면 중단된다. 사업 실패와 부모의 암 치료비로 쌓인 빚을 해결하는 것은 고사하고 당장 가족의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다. 논현복지관은 정 씨의 부채 일부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다행히 노모와 아들을 부양하려는 정 씨의 의지가 강해 약물 치료와 지속적인 관리가 이뤄지면 재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씨는 “알약을 한꺼번에 40개나 먹고 있지만 언젠가는 몸이 좋아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며 “반드시 재활에 성공해 가장으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부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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