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감호소는 늘 ‘대기번호 50번’
올해 초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이모 씨(41)는 항소심 법정에서 정신감정을 요청했다. 평소 “거지꼴을 하고 다닌다, 노숙자 같다”며 자신을 무시했던 피해자를 폭행하고 살해하려다 실패한 그는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새롭게 주장하며 치료감호소행을 희망했고, 정신감정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김용빈)는 그에게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전력을 확인할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고, 성격적인 문제가 있을 뿐 의사결정능력에 장애가 보이지 않는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미성년자 강제추행 혐의로 법정에 선 김모 씨(52)는 정신감정 요청이 받아들여지자 뛸 듯이 기뻐했다. 소아성애 성향이 있다고 주장한 김 씨는 원하는 대로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이하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정신감정을 받았고 “우울증만 엿보일 뿐 별다른 도착증세는 없다”는 결과에 감형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만족스러워했다.
최근 10년간 공주치료감호소에 정신감정을 요청한 건수는 2005년 360건에서 지난해 604건, 올해 630건(11월 말 기준)으로 매년 크게 늘고 있다. 하지만 수용 인원 850명인 공주치료감호소의 정신과 의사 수는 8명뿐이다. 의사 1인당 환자를 100명 넘게 감정하고 치료해야 하는 셈이다.
“정신감정 요청이 들어오면 재판이 끝나자마자 (재판부)실무관이 직접 공주치료감호소에 호텔 예약하듯 전화 걸어 ‘남는 자리 있느냐’고 물어본 뒤 대기를 걸어야 합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검사 종류는 많고 의사 수는 적어 한 번 의뢰해서 피고인을 보내면 감정 기간이 한두 달 걸리는 건 예사”라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평균 대기인 수가 50명이다. 수용 인원 등을 감안하면 최소 20일 정도는 기다려야 정신감정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감정유치 영장을 발부하는 재판부는 “한 달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고 고개를 젓는다.
실제 정신감정 결과는 선고 형량에 얼마나 반영될까. 본보가 최근 2년간 서울고법과 서울중앙지법의 형사촉탁기록 중 공주치료감호소에 정신감정을 의뢰한 총 61건을 분석한 결과, 감정 결과가 인용돼 감형된 사례는 28건(45.7%)에 그쳤다. 정신감정 결과, 공주치료감호소가 피고인의 주장대로 심신미약 판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18건(29.5%)은 감형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전에 범행계획이 충분했다거나, 의사결정능력에 장애가 없었다는 등의 이유가 컸다. 의뢰 내용은 알코올의존증(13건), 충동조절장애(10건), 우울증·조증장애(7건), 정신분열증(6건) 순으로 많았다.
서울중앙지법 성폭력재판부의 한 부장판사는 “피고인 입장에선 콧바람 쐬는 데다 재판은 늦춰지고, 정신감정 기간이 형에도 산입돼 교도소에서 보내는 수형기간이 줄어들 수 있으니 ‘일단 하고 보자’는 식이 강하다”고 전했다. 이런 도피성 수요를 간파한 변호사들은 일종의 변론전략으로 삼아 소송비용이 공짜인 점 등을 앞세워 피고인들에게 정신감정 요청을 부추기는 경우도 상당하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