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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축! 사우디 여성의원 탄생

입력 | 2015-12-15 03:00:00


프랑스혁명을 누구보다 반겼던 계몽여성 올랭프 드 구주가 자유와 평등이라는 혁명의 가치가 남성에게만 주어진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절망한 구주는 1791년 ‘여성인권선언’을 통해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그 의사표현이 공공질서를 흐리지 않는 한 연단에 오를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급진파의 공포정치를 비판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단두대 처형이었다. 프랑스는 미국(1920년) 영국(1928년)보다 훨씬 늦은 1944년 여성 참정권이 허용됐다.

▷신대륙이라고 해서 여성 참정권이 수월하게 주어진 건 아니다. 여성들이 1908년부터 참정권을 요구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인 끝에 1920년 참정권을 보장받는 수정헌법이 비준됐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남자들을 대신해 공장과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한 대가였다. 1870년 흑인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지 50년 만이니 ‘흑인 밑에 여성’이란 말이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여성 참정권은 이처럼 피눈물 끝에 얻어진 것이다.

▷참정권의 섬처럼 남아있던 중동 국가, 그중에서도 여성 혼자 운전도 못 하게 하는 나라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첫 선거가 치러졌다. 건국 84년 만에 처음 여성에게 투표권을 준 12일 지방선거를 통해 최소 20명의 여성의원이 탄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록 등록한 여성 유권자가 전체 여성의 2%, 여성 당선자는 전체 의원의 1%에 불과하지만 979명의 여성이 출마했고 여성 투표율은 82%를 기록해 열기만은 뜨거웠다.

▷여성의 사회활동을 제한하는 이슬람 국가의 특성상 온갖 진풍경이 펼쳐졌다. 여성은 남성과 대면할 수 없어 후보자들은 닫힌 문 뒤에서 연설했다. 투표소도 여성 전용이 따로 있다. 검은색 의복인 니깝으로 눈만 내놓고 얼굴을 온통 가리니 공약은커녕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투표가 진행됐다. 그럼에도 사우디는 민주주의와 정치 발전을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을 뗐다. 다른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성의 정치 참여는 사우디의 미래를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