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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팩트] 세속권력에 밀린 교황이 갇히고 생베네제다리가 아름다운 ‘아비뇽’

입력 | 2015-12-15 17:31:00


유수된 교황이 거닐던 정원과 산책길에서 소회 … ‘아비뇽 다리 위에서’는 프랑스 애창 민요
 
중세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아비뇽은 역사나 인문에 문외한이더라도 ‘아비뇽 유수’나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란 그림으로 친숙한 프랑스 남부 도시이다. 론강을 타고 아를에서 북서쪽으로 거슬러 오르면 아비뇽이다. 아비뇽은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주(州, region) 보클뤼즈 현(縣, Department)의 주도로 중세의 역사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고 현대적 감각도 갖춘 멋진 곳이다.

아비뇽 유수(幽囚)는 세속권력에 밀려 로마에서 쫓겨난 교황의 슬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309~1377년 기간에 교황이 이곳에 체류하면서 로마 교황청 역할을 수행했다. 유수는 ‘그윽한 곳에 죄인처럼 갇힌다’는 뜻으로 교황의 영역과 권능이 통제된 것을 고대 유대인이 바빌론에 강제 이주된 ‘바빌론 유수’에 비유한 것이다.
 

13세기 말부터 세속권력이 신장하자 프랑스왕 필리프 4세는 교황 보니파시오 8세와 싸운 아나니사건(1303)으로 우위를 차지했다. 그 결과 1305년 선출된 프랑스인 교황 클레멘스 5세(Clemens Ⅴ, 재임 1305~1314)는 프랑스왕의 강력한 간섭을 받았으며, 로마로 들어가지 못한 채 프랑스에 체류하게 됐다. 이후 1378년까지 총 7명의 교황이 아비뇽에서 억류된 생활을 했다.

교회분열기인 1378년 로마에서 로마 출신의 우르바노 6세를 선출했다. 프랑스인파는 이에 불만을 품고 대립되는 교황 클레멘스 7세를 내세워 또다시 아비뇽에 교황청을 열어 1417년까지 존속시켰다. 40년간 교황이 둘이 존재하면서 세력간 반목과 교황의 권능 훼손은 심해졌으며 재정난도 가중됐다.

유수 시대에 클레멘스 6세(재임 1342~1352)는 귀족 출신으로 화려함을 추구하는 성향이었다. 그는 1348년 프로방스 백작 겸 시칠리아 여왕으로부터 아비뇽을 사들여 파리 왕궁을 모방한 호화스러운 교황궁전을 건조했다. 이것이 현재의 아비뇽 교황궁전 모습이다. 그는 예전의 교황청이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하고 옛날 건물 옆에 새로운 건물을 짓도록 했다. 이때 의상실탑과 대공회실을 만들어서 귀한 손님이 방문하거나 큰 행사가 있을 때 행사장으로 사용했다. 새로 지은 건축물은 프레스코화로 장식하도록 했다. 아비뇽 교황청에서 볼 수 있는 벽화와 천장화는 대부분 이때 그려진 작품이다.

아비뇽 역사지구 중앙에 위치한 교황궁전은 론강 동안(東岸)에 세워진 높이 50m, 면적 1만5000㎡의 석조건물이다. 큰 규모에 웅장한 느낌을 준다. 궁전 4층에 위치한 전시실에는 역대 교황들에 대한 소개와 바닥타일, 프레스코 등이 소규모로 펼쳐져 있다. 궁전 아래층에는 당시 살았던 교황들의 취향을 반영한 다양한 차와 다과를 종류별로 판매한다.

교황궁전 좌측에는 아비뇽노트르담대성당(Cathedrale Notre-Dame des Doms d’Avignon)이 있다. 17세기에 바로크 양식의 갤러리가 증축됐고, 19세기에 대성당 서쪽 탑 꼭대기에 금으로 도금된 성모마리아상이 세워져 수 ㎞ 떨어진 곳에서도 반짝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2세기에 유행한 로마네스크 후기 양식의 건물이다. 대성당 내부의 여러 예술작품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단연 14세기 고딕 조각예술의 걸작품인 교황 요한 22세의 영묘(탑)가 있다.

프랑스 혁명으로 아비뇽 교황궁전은 감옥과 군인들의 병영으로 사용되면서 심하게 파괴됐으나 건축가 외젠 비올레르뒤크가 복원해 지금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노트르담대성당을 지나 오른편 경사로를 올라가면 아비뇽에서 가장 높은 바위 지대에 위치한 로셰 데 돔(Rocher des Doms) 공원이다. ‘교황의 정원’과 ‘교황의 산책길’이 붙어 있다. 잠시 쉬었다 가기에 좋다. 유유히 흐르는 론강과 생베네제다리뿐만 아니라 강 건너편으로 이 내려다보인다.

교황의 정원 연못에는 청둥오리 떼들이 한가로이 유영하고, 현무암처럼 보이는 기암괴석 속으로 꼬불꼬불 나선형으로 놓인 계단이 놓여 있다. 주위에 우거진 숲은 평온한 안식을 준다. 14세기 당시 이곳에 머물렀던 프랑스인 출신 교황들은 유수에서 해금돼 가톨릭의 권능을 회복하기 위해 고뇌했을 것이다. 이런 공간들은 이런 교황의 울분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아비뇽 역사지구는 총 길이 4.3㎞의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1348년 클레멘스 6세의 명령으로 지어진 성벽 사이사이엔 침략해오는 적을 향해 활을 쏘고 돌 포탄을 날릴 수 있는 공간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역사지구에는 모두 105개의 문화재가 있다. 교황궁전, 대성당 외에도 14~16세기 교회, 17~18세기의 성, 오래된 저택들이 즐비한다. 성벽은 11세기부터 교황이 건설을 시작해 클레멘스 5세 이후 본격적으로 구축됐다. 현대적인 패션 부티크, 갤러리, 초콜릿가게, 액세서리 가게 등이 중세시대 건물의 외형을 갖춘 공간에 입점해 있다. 시청·경찰서 등 관공서와 대학도 대부분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역사지구는 20년에 걸쳐 복원 중이다. 14세기 당시의 건축물을 복원하기 위해 당대에 쓰였던 돌 중 버려진 돌들이나, 같은 시기의 문화재를 보수하고 남은 당시에 쓰였던 돌을 그대로 활용한다. 심지어 돌의 재질까지 맞추려고 노력한다.

아비뇽 역사지구가 교황의 종교적 공간이라면 생베네제다리(Le Pont St Benezet)는 시민들은 물론 관광객에게 친숙한 기념물이다. 아비뇽과 론강 건너편의 빌뇌브레자비뇽(Villeneuve-les-Avignon)을 이어주는 다리는 1177년 양치기인 베네제와 그의 제자들이 짓기 시작해 1185년에 완공됐다. 베네제가 “신이 론강의 중심인 아비뇽에 다리를 세우라”고 계시했다고 전하자 다들 그를 미친 놈으로 취급했으나 실제로 거대한 돌을 움직이는 기적을 행하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 다리가 세워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생베네제다리는 길이가 900m나 되고 21개의 기둥을 사이에 두고 22개의 거대한 아치가 이어져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644년 홍수로 4개의 아치가 유실됐고 1669년 재앙적인 홍수로 구조물이 거의 붕괴됐다. 이후 지속되는 홍수로 현재 4개의 기둥과 이를 이어 주는 아치, 다리를 건설한 베네제를 기리는 작은 생 니콜라 예배당만 남아 론강과 옛 교황청을 바라보고 있다. 아비뇽은 이 다리가 세워지기 전까지 약 1200년 동안 근처에 있는 님(Nimes)과 아를(Arles) 등에 비하면 작은 도시에 불과했으나 론강을 건너게 해주는 생베네제다리가 건설되면서 발전의 기회를 잡았다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민요로 ‘아비뇽 다리 위에서’가 있다. 생베네제다리가 완성된 직후에 생겨난 이 노래는 모든 사람들이 직업의 귀천과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원을 그리며 흥겹게 춤을 춘다는 가사다. 그래서 막상 아비뇽 시민들은 도시의 자랑거리로 웅장한 교황청 대신 론강에 걸쳐 있는 부서진 생베네제다리와 ‘아비뇽 다리 위에서’ 민요를 꼽는다고 한다.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명작인 ‘아비뇽의 처녀들’은 실제 유래가 프랑스 아비뇽이 아니다. 피카소가 유년을 보냈던 바르셀로나의 홍등가의 이름이 아비뇽으로 선원들을 상대로 매춘이 이뤄졌다. 벌거벗은 다섯 매춘 여성을 입체파 화풍으로 그린 것으로 낭만적인 제목과는 달리 그림의 내용은 정반대다.

피카소는 1900년대 들어 원근법과 3차원적인 그림 구성에서 벗어나려 했다. 3차원의 그림도 세상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관점에서 사물의 실체를 ‘여러 시점(視點)’에서 바라보고 대상의 단편들을 하나의 평면 위에 연결하는 방식을 시도했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입체주의 그림의 효시로 기존의 ‘대상과 그림은 닮았다’는 회화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피카소는 사물을 원기둥·구로 보았던 폴 세잔, 원근법·명암법을 무시한 야수파, 아프리카 미술에 관심을 두었던 앙리 마티스 등의 영향을 골고루 받아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생베네제다리와 비견할 건축물이 로마시대에 지어진 수도교(水道橋)인 ‘가르교(Pnot du Gard)’이다. 아비뇽에서 차로 30분 정도 이동하면 가르강 계곡을 가로지르는 유서 깊은 이 다리를 만나볼 수 있다. 1세기 전반에 석회암으로 건조됐다. 수면으로부터 높이가 49m에 이르고 길이가 275m에 달하는 초대형 교량이다. 연속되는 아치가 3층으로 쌓아 올려진 게 장관이다. 로마시대 주요 물 공급망으로 500여 년간 활용됐다. 로마인들의 뛰어난 기술력을 볼 수 있는 교량으로서 1985년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이밖에 앙글라동 미술관(Musee Angladon), 프티 팔레 미술관(Musee du Petit Palais), 칼베 미술관(Musee Calvet) 등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앙글라동 미술관에는 드가, 시슬레, 고흐, 피카소, 마네 등 유명 화가의 작품이 가득 있다. 세잔의 정물화와 모딜리아니의 ‘분홍색 옷을 입은 소녀’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프티 팔레 미술관에는 아비뇽 화파의 작품과 이탈리아 회화의 걸작들이 전시돼 있다. 보티첼리의 초기 작품인 ‘성 모자’를 감상할 수 있다.

매년 7월 3주간 열리는 아비뇽 페스티벌엔 연간 5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연극축제가 중심이며 춤, 뮤지컬, 현대음악 등도 공연된다. 이 기간 시민들은 자택을 관광객에게 숙소로 대여해주고 휴가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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