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란 무엇인가 : 『지낭(智囊)』편 4회
◆1◆
남당(南唐)의 서연휴(徐延休), 서현(徐鉉), 서개(徐鍇)는 ‘삼서(三徐)’로 불리며 강동(江東) 지역에서 이름이 높았다. 아는 것이 많고 학문도 깊어 북송(北宋) 조정에까지 명성이 미쳤으며, 특히 산기상시(散騎常侍)의 지위에 이르렀던 서현은 그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손꼽혔다.
남당에서는 서현을 보내 조공을 올리려 했고, 북송에서는 관례대로 조공 사절을 보좌하는 압반사(押伴使)를 보내야 했다. 그런데 북송 대신들은 스스로 서현에게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 모두 그 일을 꺼렸다. 재상은 인선에 어려움을 느껴 결국 태조에게 사정을 아뢰었다. 태조가 말했다. “잠시 물러가 계시오. 짐이 알아서 선발하겠소.”
궁전 시위는 영문도 모른 채 하릴없이 분부에 따랐다. 그는 강을 건너 남당으로 가서 서현을 만났다. 과연 서현의 날카로운 언변은 구름과 같이 아득했다. 압반사가 된 궁전 시위는 입을 벌리고 놀라 바라만 볼 뿐 서현의 말에 대꾸조차 못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뿐이었다. 서현은 사정을 짐작하지 못한 채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자 더욱 애를 썼다. 며칠 동안이나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었지만 궁전 시위는 여전히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러자 서현 또한 지쳐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평어(評語)◆
악비(岳飛)의 손자이자 남송(南宋)의 문학가로 이름을 날린 악가(岳珂)는 이렇게 말했다. “경학과 역사에 통달했던 도곡(陶谷)이나 두의(竇儀) 같은 유명한 학자도 모두 당시 북송의 관리였다. 그들을 보내 응대하게 했다면 어찌 서현만 못했겠는가? 대국의 체면을 생각해서 태조는 그와 같은 방법을 쓰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 또한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전략가의 방식이었을까?”
공자가 마부를 보내 분란을 해결한 것이 어리석음으로 어리석음에 대응한 사례였다면, 태조가 궁전 시위를 압반사로 삼은 것은 어리석음으로 현명함을 궁지에 내몬 사례이다. 지혜로움으로 어리석음을 이기려 하면 어리석은 이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지혜로움으로 지혜로움에 대응하려 한다면 지혜로운 이는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풍몽룡 지음|문이원 옮김|정재서 감수|동아일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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