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10개 구단이 승리수당을 포함한 ‘메리트 시스템(성과급제)’을 내년부터 금지했다. 위반 시 10억원의 벌금을 물린다. 총알(돈)이 두둑했던 삼성은 그동안 메리트 시스템 폐지에 미온적이었지만, 합리적 지출을 새로운 지향점으로 삼으면서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스포츠동아DB
■ 프로야구 10개구단 단장들이 합의한 메리트 시스템 폐지… 삼성 찬성의 의미는?
자금력 바탕 메리트 주도하던 삼성→제일기획 이관 뒤 자립경영 체제→용병 다년계약 반대 “쓸때는 쓴다”
8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을 끝으로 실질적인 2016시즌이 시작됐다. 그 서막은 9∼10일 서울 서초구 더 케이 호텔에서 열린 윈터미팅이었다. KBO리그 10개 구단 단장들과 실무자들이 1박2일에 걸쳐 현안을 논의했다. 실행위원회를 겸한 이 자리에서 단장들은 한 가지 합의를 했다. 바로 승리수당을 포함한 ‘메리트 시스템(성과급제)’ 금지였다. 위반 시 10억원의 벌금을 물리고, 내부고발자에게 10억원의 포상금을 주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KBO 이사회의 의결을 남기고 있지만 채택이 유력하다. 어떤 일은 표면보다 이면의 맥락이 훨씬 중요한데, 이 사안이 그렇다. 그 과정을 추적해보면 한국야구계의 오피니언 리더 격인 삼성의 운영 패러다임 변화가 뚜렷이 목격되기 때문이다.
● 왜 삼성은 반대하지 않았나?
상대적으로 살림 규모가 작은 구단들은 메리트 시스템 폐지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지만 삼성까지 동참한 것은 음미할 대목이다. 모 단장은 “삼성이 (일부 선수들의 해외원정도박 혐의 이후) 지금 돈을 쓸 분위기가 아니지 않겠는가? 게다가 삼성야구단의 모기업이 제일기획으로 이관되면 돈 쓰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긴축이 아니라 합리적 지출을 지향하는 삼성
과거 삼성이 차원이 다른 양적 투자로 타구단을 압도했다면 이제 합리적 투자로 효율경영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긴축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쓸 필요가 있으면 아낌없이 쓰겠다는 기조는 유효하다. 일례로 외국인선수 다년계약 도입에 대해 가장 강력히 반대한 팀이 삼성이었다. 한 단장은 “다년계약을 도입하면 스몰마켓 팀도 특급 외국인선수를 데려올 여지가 있다. 그러나 삼성이 이 제도를 반대했다는 것은 곧 특급 외국인선수에게 대형투자를 감행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의미”라고 해석했다. 제일기획의 우산 아래 들어가도 성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목표는 살아있지만, 이제는 더 따져보고 원칙에 입각해 쓰겠다는 삼성의 방향성이 읽힌다.
삼성이 변화하고 있다. 이는 곧 좁게는 한국프로야구, 넓게는 한국프로스포츠의 지형이 바뀌는 것을 뜻한다. 성적이 아니라 자립 생존에 방점이 찍히고 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