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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2015년 한국을 대표하는 말

입력 | 2015-12-17 03:00:00


미국의 권위 있는 영어사전 메리엄웹스터는 올해 대표 단어로 접미사인 ‘-ism(주의)’을 꼽았다. 올 한 해 메리엄웹스터 웹사이트의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찾은 단어가 사회주의(socialism), 인종주의(racism), 공산주의(communism), 자본주의(capitalism), 테러리즘(terrorism)이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무슬림 입국 금지를 제안한 후에는 파시즘(fascism)을 검색한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일본 한자능력검정협회는 올해 일본에서 벌어진 일을 대표하는 한자로 ‘安(안)’을 선정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이름에 ‘安’이 들어 있고 아베 정권이 추진한 안보법(安保法)을 둘러싸고 국론이 양분됐으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나라의 평안(平安)을 기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는 것이다. ‘안’이 추천된 여러 이유 중에는 일본군 위안부(慰安婦)가 자주 거론된 것도 들어가 우리로서는 씁쓸한 느낌이 든다.

▷한국에는 이런 걸 뽑는 단체가 없지만 올해 한국을 대표하는 단어를 꼽아보라면 ‘-포’ ‘헬-’을 꼽고 싶다. 청년들을 가리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여기에 인간관계와 주택 구입을 더한 ‘5포’를 넘어, 개인의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다고 해서 ‘7포’ 세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아예 포기하는 항목의 수를 개방해 놓은 ‘n포’란 말도 있다. 개인적인 포기를 넘어 우리나라를 더 이상 희망 없는 땅이라고 자조해서 부르는 ‘헬(hell)조선’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올 연말 개봉한 한 영화의 제목은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다. 누군가 ‘열정을 가지고 어쩌고저쩌고’ 하니까 상대방이 말을 끊으며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라고 쏘아붙인다. 힘든 일에 비해 형편없는 보수를 지칭하는 ‘열정페이’란 말이 이미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게 불과 4년 전인데 어느새 이런 식의 위로조차도 냉소적인 반응으로 돌아오는 시대로 바뀌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