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
나에겐 고향에 갈 수 있는 날이 통일이다. 탈북자가 북에 갈 수 있을 정도로 남북의 자유왕래가 보장되는 세상이라면 굳이 당장 두 체제를 통합하지 않아도 크게 불편한 점은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김정일이 있는 한 고향에 갈 날은 요원했다. 그래서 다음으로 추정해 본 것이 김정일의 사망 시기였다. 나는 그 시점을 2014년으로 예상했다. 정확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김일성이 82세까지 살다 간 것을 볼 때 김정일은 10년은 더 빨리 죽을 것이라 예상했을 뿐이었다. 김일성은 골격도 굵었고 젊었을 때 많이 걸어 다녀 체력도 좋았다. 반면 김정일은 아버지와는 달리 골격은 약한 편인데, 30대 초반부터 배가 엄청 나오는 등 자기 절제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기름진 음식과 여인을 멀리할 줄 모른다면 장수하긴 틀렸다고 봤다. 사인은 김일성처럼 가족력인 심혈관 질환 때문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2011년 바로 오늘 김정일이 사망했다. 예상보다 무려 3년이나 빨리 사망했다. 심혈관 질환이 사인인 것도 맞혔다. 문제는 이후 후계자는 4년 정도 버틸 것이라는 나의 추정이 빗나간 것이다. 예상대로라면 지금 북한은 붕괴 직전에 이르러야 한다.
나는 무엇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지금 와서 보면 설명할 핑계는 있다. 나는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깨어날 줄 몰랐다. 만약 그때 김정일이 후계자를 임명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했다면 지금 나는 분명 고향에 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늘은 기회를 내가 아닌 김정일에게 주었다. 그를 쓰러지게 해 “곧 데려갈 것이니 빨리 준비하라”는 암시를 준 뒤 3년이란 시간을 보태준 것이다.
뇌중풍에서 회복된 김정일은 이후 3년간 모든 일을 팽개치고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정한 뒤 권력을 넘겨주는 일에 골몰했다. 김정은이 후계자임을 공포하고, 2011년 10월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까지 초청해 후원을 다짐받은 뒤 김정일은 사망했다. 할 일은 거의 다 한 것이다. 이는 오늘날 김정은 체제가 굳건히 버틸 수 있는 바탕이 됐다.
여객선 사고조차 수습 못해 쩔쩔매며 우왕좌왕하는 정부, 국민과 경제는 안중에 없고 오직 자기 자리를 위해 매일매일 싸움으로 보내는 정치권을 보면 북한이 붕괴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끔찍하다.
내게 더 절망적인 일은 3년 뒤인 2018년에도 고향에 갈 확률은 높아 보이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김정은 체제가 불안하다고 공염불처럼 되풀이하고 있지만, 나는 그 반대로 보고 있다. 외부 사람들이 찍어온, 1∼2년 사이 교통 정체가 벌어지는 평양 시내의 모습과 말쑥한 시민들의 옷차림 역시 판단의 한 근거이긴 하지만, 그게 본질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김정은에게 A학점을 주는 북한 주민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4년 전 어린 김정은을 보고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이다. 바로 엊그제 통화한 북한 주민도 “과거라면 10년이 걸릴 변화가 요즘은 1년 만에 이뤄지고 있다”며 좋아했다. 변화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기대에 지금까지 김정은은 잘 부응하고 있다.
하지만 나도 희망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 사회의 빠른 변화와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에 새로운 희망을 걸어본다.
이제 나는 고향 갈 시점을 다시 예상해야 한다. 통일 뒤에 어떤 숫자를 붙일 것인가.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