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OO이 아빠가 맞아요?” 배우 이름 대신 극중 이름을 물어볼 정도로 즐겨본 드라마였다.
서구적인 눈매며 훤칠한 키까지 딸과 똑같이 생긴 아버지였다. 백 모씨(55·여)는 믿기지 않았다. 좋아하는 드라마 여주인공의 아버지를 직접 만난 것이다. “공부는 못했는데 대사를 잘 외우는 것 보면 신통하다”며 좋아하는 여배우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하는 박모 씨(57)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올해 3월 마침 처분하려고 했던 경기 파주시의 1639㎡ 땅을 10억 원에 사주겠다고 해서 계약서를 쓰고 박 씨로부터 계약금 1억5000만 원을 받았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나도 잔금 8억5000만은 들어오지 않았다. 박 씨는 50억 원이 넘는 잔금 증명서를 보여주고, 은행 지점장을 만나게 해주며 “돈이 곧 들어 온다”고 안심시키기도 했다. 답답했지만 좋아하는 배우의 아버지여서 믿고 기다렸다.
박 씨의 말이 거짓이란 걸 알게 된 것은 올 5월이다. 처음 들어 본 전북 임실군의 한 조합공동사업법인에서 매입하지도 않은 벼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영문을 몰랐다. 뒤늦게 박 씨가 몰래 토지 매매계약서를 담보로 전북 임실군의 한 조합에서 10억 원 상당의 벼를 외상으로 매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사이 박 씨는 외상으로 구입한 벼를 정미소에 처분해 7억5000만 원의 수익을 올린 상태였다. 이전에 보여줬던 잔고 증명서는 다른 사람 명의의 것이었고, 은행 지점장은 내용도 모른 채 그저 박 씨 일당이 시키는 대로 말했을 뿐이었다. 박 씨는 일당 강모 씨(56) 등과 돈을 나눠 갖고 “돈이 없다”고 버티고 있다.
유원모 onemore@donga.com·김유빈 채널A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