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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도 ‘고독死’… 고시원 누구도 보름간 몰랐다

입력 | 2015-12-18 03:00:00

장애아동 언어치료 프리랜서 여성
이불 덮은 상태 숨져… 관리인이 발견
방세 두달치 밀려… 휴대전화도 정지




장애 어린이를 돕는 일을 하던 20대 여성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고시원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한 지 이미 보름가량 지난 상태였다. 평소 앓던 질병이 악화돼 쓸쓸히 숨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17일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15일 오후 1시 30분경 관악구의 한 고시원에서 황모 씨(29·여)가 숨져 있는 것을 고시원 관리인이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관리인은 오랜 기간 황 씨와 연락이 되지 않고 방에서 인기척이 없자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황 씨는 발견 당시 이불로 덮인 상태였다. 방 안에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다. 자살을 암시하는 유서 등도 발견되지 않았다. 곳곳에 쓰레기 더미가 남아 있었다. 고시원 관리인은 경찰 조사에서 “지난달 27, 28일경 마지막으로 황 씨를 봤다”고 말했다. 경찰은 그의 진술과 시신 상태 등을 감안할 때 황 씨가 약 15일 전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황 씨는 프리랜서 청각장애아동 언어치료사로 일했다. 고정적인 일자리가 없어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로부터 종종 용돈을 받았지만 월세조차 내기 버거웠다. 월 43만 원인 고시원 방세가 두 달 치나 밀려 있었다. 보증금 100만 원도 이미 방세로 충당한 상태였다. 휴대전화가 있었지만 요금 미납으로 착신이 정지돼 지방에 사는 아버지와는 공중전화로 통화를 했다. 가족을 만난 건 올해 추석이 마지막이었다. 지난해 병원 치료를 받던 황 씨가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아 남동생이 112에 신고한 일도 있었다.

황 씨는 어릴 때부터 기관지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그가 평소 앓던 질병이 악화돼 숨진 후 뒤늦게 발견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사인 분석을 의뢰하는 한편으로 건강보험공단에 황 씨의 진료 명세도 확인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가뜩이나 몸이 약한 데다 주변 위생상태가 열악해 병이 악화됐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관리인을 제외하곤 고시원 거주자 대부분이 황 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주위의 무관심 속에 보름이나 방치된 황 씨의 시신은 서울 동작구의 한 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관리인이 청소를 한 뒤 고시원 방에 남은 황 씨의 흔적이라곤 책장에 붙인 만화 캐릭터 스티커 5개가 전부였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