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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의 정치해부학]안철수가 문재인을 이길 수 없는 이유

입력 | 2015-12-18 03:00:00


박성원 논설위원

안철수 의원이 13일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면서 “나침반도, 지도도 없다”고 했을 때 문득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떠올랐다. 최 부총리가 지난해 7월 어려운 경제상황을 들면서 “지도에도 없는 길을 가게 될지 모른다”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도 없이 초이노믹스라는 경제정책을 총괄해온 최경환은 새누리당 복귀를 목전에 두고 있고, 나침반도 지도도 없이 정치혁신을 하겠다는 안철수는 1년 9개월간 몸담았던 당을 떠났다.


결단한 사람이 전화 기다렸다?

안철수는 탈당 이틀 뒤인 15일 새정치연합을 향해 “물이 천천히 뜨거워지면 죽는 냄비 속 개구리 같다” “평생 야당 하기로 작정한 정당”이라고 일갈했다. 문재인 대표에 대해서도 “생각이 다른 사람을 ‘새누리당’이라고 배척하는 사람”이라고 맹비난하고 “집권할 수도 없지만, 집권해서도 안 된다”며 각을 세웠다.

놀라운 것은 그런 안철수가 “(탈당 회견을 위해) 긴 복도를 걸어가는 순간까지도 (문 대표의) 전화를 기다렸다”는 대목이다. ‘최후통첩’ ‘혈혈단신’ 운운하며 새로운 항해를 결단했다는 사람이 뒤로는 손을 잡아주기를 기다렸다니!

이런 지도자를 믿고서 제1야당이라는 큰 집을 버리고 한 배를 타는 데 정치생명을 걸 정치인이 몇이나 될까. 어제 문병호 황주홍 유성엽 3명의 의원이 새정치연합 탈당을 선언했지만 정작 3년 전 유일한 측근 의원이었던 송호창 의원은 “야권에는 통합이 필요하다”며 합류하지 않았다. 1월경 현역 의원 20%를 잘라내기 위한 당 선출직공직자 평가위원회의 소속 의원 평가결과 공개를 전후해 공천 탈락 대상 의원 일부가 탈당 대열에 합류한다 한들 김빠진 맥주로는 파괴력이 클 수 없다.

리얼미터가 14, 15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안철수 신당 지지율은 16.7%로 새누리당(37.6%) 새정치연합(25.2%)에 이은 3등이다. 안 의원이 2013년 신당 창당을 추진할 때 신당 지지율 30% 안팎을 기록하며 민주당 지지율의 3배 이상을 보였던 것과 판이하다. ‘안철수 현상’은 더 이상 ‘100m 밖 미인’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빅텐트’라는 이름 아래 야권 통합을 요구하는 호남과 진보층의 압박이 가중되면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안철수의 혁신과 새 정치는 여전히 3년 반 전 정치에 뛰어들 때 제시했던 ‘평화 위에 세우는 공정한 복지국가’(‘안철수의 생각’·2012년) 수준의 모호한 담론만 맴돌고 있다. 끓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안 의원은 대내외적 파고 속 고사 위기의 한국 경제를 살릴 구조개혁 방안 같은 뜨거운 국정 현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힌 적이 거의 없다. 문재인 체제의 새정치연합을 ‘패권주의’라고 공격하고 “이토록 무책임한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11월 17일)이라며 정권을 비판한다 해서 중도의 가치가 손에 잡히는 건 아니다.


나침반·지도 없이 되겠나

정당이란 ‘합치된 노력으로 국가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모두가 동의하는 특정의 원칙에 근거해서 뭉친 사람들의 집합’이라고 에드먼드 버크는 정의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현실을 구체적으로 진단하고 미래를 헤쳐 나가는 나침반, 지도 같은 이념·정책도 없이 말의 성찬으로 사람을 모아 봐야 새로운 패거리에 불과하다. 그런 서클 수준의 집합체로는 지역 이념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패권주의 기득권이라는 낡은 정치에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