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신을 묘사한 무신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그런데 화내는 것만으로 끝내지 못하는 자들이 언제든 있는 법이다. 마누라신이 그랬다. 신들이라고 예외가 있겠는가. 마누라신은 생불할망이 탄생시킨 자손들에게 마마를 주어 심하게 앓도록 했다. 자손들의 고운 얼굴이 일시에 뒤웅박같이 못생긴 얼굴이 되어 갔다. 공손하게 부탁했건만 오히려 자신이 탄생시킨 자손들에게 마마를 앓게 하다니! 생불할망의 공손함은 봄바람에 눈 녹듯이 사라져 갔다. 그 대신에 팥죽 끓듯 화가 치밀었다. “마누라신이여, 하는 짓이 괘씸하구나. 나한테도 한 번 굴복하여 사정할 때가 있을 것이다.” 생불할망은 서천꽃밭에서 아이를 점지시키는 생불꽃을 가져다가 마누라신의 부인인 서신국에게 척 하고 잉태를 시켜 버렸다. 어느새 한 달 가고 두 달 가고 열 달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다 열두 달이 훌쩍 넘어가니 서신국은 해산을 하지 못해 차츰 죽어갔다. 다급해진 서신국이 남편을 불러놓고 애절하게 부탁했다. “난 이제 곧 죽게 될 것이니 마지막으로 생불할망이라도 청해 주십시오.” 남자의 근성이라니! 마누라신은 죽어가는 부인을 앞에 놓고서 한참을 생각했다. “남자가 어찌 여자를 청하러 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부인이 당장 죽게 되었으니 한 번 가보기나 하지.”
마누라신은 백망건에 백도포를 입고 거드름스럽게 말을 타고서 생불할망을 찾아갔다. 생불할망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마누라신은 하는 수 없이 댓돌 아래로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생불할망이 거만하게 말했다. “날 너희 집에 청하고 싶으면 바삐 돌아가서 중처럼 머리를 삭삭 깎고, 장삼에 송낙(여승이 주로 쓰던 모자)을 꾹꾹 눌러쓰고, 버선만 후다닥 신은 채로 다시 댓돌 아래로 와 엎드려라. 그러면 가겠다.” 어쩌랴. 마누라신은 생불할망이 시키는 대로 중의 행색을 하고서 다시 댓돌 아래로 와서 엎드렸다. “그만하면 하늘 높고 땅 낮은 줄 알겠느냐? 뛰는 재주가 있다지만 나는 재주도 있느니라.” “예, 과연 잘못했습니다.” 생불할망은 내친김에 한 번 더 마누라신을 몰아붙였다. “물명주로 서천강에 다리를 놓아주면 가겠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제야 생불할망은 마누라신이 놓아준 물명주 다리를 이리 밟아가고 저리 밟아가며 강을 건넜다. 그리고 곧장 마누라신의 집으로 들어가 옥같이 부드러운 손으로 서신국의 허리를 삼세 번 쓸어내 자궁을 열어 해산을 시켰다. 신화의 결말이다. 남신 못지않다, 여신의 근성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