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대학생 알바지옥 대학생 아르바이트로 헬조선에서 살아남기
대학생들에게 스마트폰은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수단이자 족쇄이기도 하다. 조영철 기자
그러나 면접관은 지원자들에게 “뉴질랜드 양 흉내를 내봐라” “양털 깎는 시늉을 해봐라” 같은 황당한 주문을 했다. 학생들은 뽑히기 위해 무리한 요구에도 열심히 응했으나 이 중 뉴질랜드행 티켓을 손에 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한 외주제작사 PD가 ‘몰카극장’이라는 이름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논란이 커지자 10월 30일 양승규 캠퍼스TV 편성제작본부장은 인터넷 공식 홈페이지에 ‘‘몰카극장’과 관련해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이유 불문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사과문을 게재했으나, 대학생들의 열정을 농락했다며 거센 반발을 샀다.
이 사건이 공분을 산 이유는 생계를 위해, 혹은 스펙을 위해 아르바이트 자리에 목매는 대학생을 ‘꿀알바’라는 떡밥으로 농락했기 때문이다. 금수저가 아닌 대학생에게 아르바이트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대다수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혹은 학점과 자격증을 뛰어넘을 스펙 한 줄을 위해 아르바이트 시장에 뛰어든다.
구인구직 포털사이트 알바몬의 8월 조사에 따르면 업·직종별 평균 아르바이트 시급을 기준으로 대학 연평균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동시간이 소요되는지 산출한 결과 커피전문점(대학생 선호 아르바이트 1위)에서 일할 때 531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립대의 경우 588시간, 국공립대는 321시간이 필요했다. 하루에 4시간씩 최소 132일을 근무해야 등록금을 충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대학생이 선호하는 일반 음식점, 사무보조, 서빙 등 상위 10개 업종 아르바이트로 4년제 대학 한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려면 평균 529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일자리의 평균 시급은 6292원이다.
고소득 아르바이트로 눈 돌릴 수밖에 없는 이유
겨울방학 시즌을 맞아 한 대학생이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살펴보고 있다. 조영철 기자
서울의 한 사립대 재학생인 임모(23) 씨는 “장학금을 받고도 등록금이 매학기 200만 원 가까이 나와 새내기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커피숍부터 인터넷 블로그 마케팅, 역할대행 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는 임씨는 “20대 초·중반은 아르바이트를 한 기억밖에 없다”고 했다. 임씨 경험상 투자 시간과 노력 대비 수익이 높았던 것은 역할대행 아르바이트였다. 임씨는 “대행업체를 통해 결혼식 하객 아르바이트를 몇 번 했다. 신랑, 신부 얼굴과 간단한 내용을 숙지한 후 식장에서 인사를 나누고 축의금 넣고 방명록을 썼다. 착석해 예식을 보다 기념촬영을 하고 뷔페를 먹으면 끝난다. 부부 중 상대적으로 하객이 적은 쪽이 고용했다. 시간당 1만5000원에서 2만 원가량을 받았는데, 기념사진을 같이 찍는 건 귀찮았지만 식사도 해결되고 다른 아르바이트처럼 종일 서 있을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임씨는 “하객대행보다 애인대행이나 가족대행 아르바이트가 훨씬 벌이가 쏠쏠한데, 애인대행은 웃돈을 받고 단순한 대행 이상의 것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시도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자리가 시급한 대학생들은 때로 사기꾼들에게 좋은 표적이 된다. 대표적인 것이 다단계와 대포통장 사기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유통된 대포통장은 4만 건이 넘는다. 대학생 신모(23) 씨는 지난 여름방학 사무보조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과정에서 아찔한 경험을 했다.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고 업체로부터 서류 양식을 받아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주민등록번호, 은행 계좌번호, 주소 등을 적어 팩스로 보냈다. 다음 날 업체 관계자는 “사원증을 만들어야 하니 체크카드와 증명사진을 퀵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신씨는 “뭔가 이상하다 싶어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보니 전형적인 대포통장 사기 수법이었다. 서류에 쓴 계좌는 해지했지만 주민등록번호나 이름 등이 노출돼 찝찝하다”고 말했다.
사회 경험이 부족한 대학생들은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끙끙 앓는 경우가 많다. 손님이 없으면 예정 시간보다 일찍 퇴근시키는 ‘꺾기’를 당하는 건 물론이고, 12개월 이상 근무하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이유로 11개월 만에 잘리는 일이 허다하다. 전문가들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반드시 근로계약서를 챙기고 메모와 녹음을 일상화하라”고 강조한다. 서지현 알바천국 마케팅팀장은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1인 이상 근로자가 있는 어느 사업장에서든 근로계약서 작성은 필수이자 의무사항이다. 일을 시작하기 앞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고용자와 아르바이트생이 한 부씩 나눠 가지면 최저시급을 보장받을 수 있고 지급 방법, 연차수당, 주휴수당, 야간수당 등 근로기준법에 의해 지급되는 각종 수당도 보호받을 수 있다. 근로계약서는 권리 보호를 위한 기본 장치이므로 꼭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공부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
서랍 속 근로계약서도 다시 보자
백우연 청년유니온 노동상담국장은 “기본적으로 청년들이 만나는 아르바이트 현장이 하향평준화돼 있다. 근로계약서는 필수지만 근로계약서로도 증명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기록하는 습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학생은 주휴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근무 기록표를 촬영해놓으면 나중에 증거 자료로 쓸 수 있다. 또 상황이 이상할 때는 녹음이나 캡처를 해두는 것도 유용하다. 사직서에 서명해버리면 부당해고수당을 받을 수 없다. 만약 서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을 녹음해둔다면 해고되더라도 정황을 밝히고 구제받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사업장을 관할하고 감독하는데, 일단 관리감독관의 수가 적습니다. 재작년에 보니 근로감독관 1명이 1700여 개 사업장을 감독하고 있었어요. 또한 최저임금도 주지 않으면 근로기준법 위반이라 형사처벌 대상인데, 2013년 최저임금 위반 업체 2만여 곳 가운데 사법처리된 업체는 11곳에 불과했어요.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다 보니 사업주들도 큰 문제가 없으리라는 걸 알고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 거죠. 이에 대한 포괄적인 문제의식과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르바이트하다 부당한 일을 겪었다면?▼
대학생들이 털어놓는 가장 큰 고충은 임금 체불과 최저임금 미지급 문제다. 청년유니온은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부당한 상황을 겪은 사람들을 위해 무료 노동상담(02-735-0262)을 진행하고 있다. 상담은 익명으로 진행되며 부당한 상황과 사건 등에 대한 해결 방안을 상담하고 행정절차를 안내해준다.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인 알바노조알바연대는 온라인 카페 ‘알바상담소(cafe.naver.com/talkalba)’를 통해 무료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청소년근로권익센터(1644-3119)에서도 아르바이트 중에 피해를 입었을 때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와 카카오톡 상담도 가능하다.
구인구직 포털사이트 알바천국에서는 24시간 사전심사제를 통해 대포통장, 취업 사기와 관련 있는 채용공고를 필터링하고 있다. 서지현 알바천국 마케팅팀장은 “알바천국의 채용 공고를 보고 면접을 보러 갔으나 그 내용이 사실과 다르면 면접 교통비를 보상해주는 면접비 보상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 밖에도 더블기업인증제, G마크 인증 등으로 휴·폐업, 정지된 사업장의 채용공고 등록을 원천적으로 차단코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 시작 전 알아야 할 노동법 상식 10가지▼
1. 근로계약서 : 임금, 근로시간, 휴일, 휴가 등 근로조건이 담긴 중요한 문서로 반드시 작성해 사장과 한 부씩 나눠 가져야 한다. 만약 근로계약서에 위법한 내용이 있으면 그 부분은 무효이고, 법에서 정한 기준이 적용된다.
2. 최저임금 : 모든 노동자는 최저임금 이상 임금을 받아야 한다.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았을 때는 최저임금으로 계산된 임금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2015년 최저임금은 5580원, 2016년 최저임금은 6030원이다.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직원에게 공지하지 않아도 당해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3. 주휴수당 : 일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유급휴일이 부여되는데 이날이 주휴일이고, 이날 받는 임금이 주휴수당이다. 다만 주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이상이어야 하고, 만근해야 받을 수 있다.
4. 가산임금 : 5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연장·야간·휴일 노동에 대해서는 각각 시급의 50%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시급이 1만 원이면 1만5000원). 각각의 사유가 중복될 때는 가산임금도 중복 지급된다. 휴일이면서 야간에 추가로 일했다면 모두 중복돼 150%의 임금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시급이 1만 원이면 2만5000원)
5. 임금 : △통화 가능한 화폐로(현금 또는 계좌이체) △전액 △노동자 본인에게 △월 1회 이상 정해진 날에 지급해야 한다. 벌금이나 손해배상이라며 임금을 일부만 지급하거나, 편의점 등에서 정산 후 부족한 돈을 아르바이트생에게 메우게 하는 건 불법이다.
6. 휴게시간 : 노동시간이 4시간인 경우 30분, 8시간인 경우 1시간의 휴게시간이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 일반적으로는 점심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쓴다. 휴게시간은 무급이지만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대기시간은 노동시간이기 때문에 유급이다.
7. 연차휴가 : 5인 이상 사업장일 경우 입사 1년 미만 노동자는 한 달을 만근하면 그다음 달 유급휴가 하루가 부여된다. 입사 1년이 되는 날에는 15일의 연차유급휴가가 발생한다. 연차휴가는 노동자가 원하는 날에 쓸 수 있지만 사업장에 막대한 피해가 예상될 때는 사장이 날짜 변경을 요청할 수 있다. 만약 휴가를 쓰지 않았으면 임금으로 전환돼 연차수당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여성 노동자가 청구하면 월 1회 이상 생리휴가(무급)를 부여해야 하며, 사장이 변경을 요청할 수 없다.
8. 휴업수당 : 사장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계약된 퇴근시간보다 직원을 일찍 퇴근시키거나 아예 출근시키지 않는 것을 ‘꺾기’라고 한다. 근로기준법은 휴업수당을 규정해두고 있는데,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휴업할 경우 적어도 평균임금의 70%를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단, 5인 이상 사업장에서만 받을 수 있다.
9. 산재보상 : 일하다 다쳤을 때는 산재보상을 신청해야 한다. 산재보험은 모든 사업주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것으로,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보상받을 수 있다. 단 하루, 단 한 시간을 일했어도 다치면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다. 사업주가 산재 처리를 해주지 않는다면 노동자가 직접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하면 된다.
10. 부당해고 : 아르바이트생이라고 함부로 해고할 수 없다. 해고에는 정당한 사유와 절차가 필요한데, 반드시 해고 사유와 시기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서면으로 적어도 30일 전 통보해야 한다. 즉시해고를 하려면 30일 치 임금을 줘야 한다. 문자메시지나 음성통화, 구두 해고 통보는 모두 불법이다. 5인 이상 사업장에서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는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할 수 있고, 구제명령이 떨어지면 해고된 날로부터의 임금 상당액을 받을 수 있다.
자료 | 알바노조알바연대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5년 12월 23일자 101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