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언석 기획재정부 제2차관
임금피크제는 2030세대와 50대 이상 근로자의 상반된 이해관계를 조합한 제도다. 연공서열식 임금체계에서는 근무연한이 긴 고령자의 임금수준이 성과와 무관하게 높다. 임금피크제는 고령자의 임금을 일부 축소해 이를 다른 직원의 임금인상이나 신규채용에 활용하는 것이다. 일종의 성과에 따른 임금체계인 셈이다. 젊은 세대는 신규채용이 늘고 중장년 세대는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에 양쪽 세대 모두에게 이득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임금피크제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다.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으로 당장 내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의 정년이 58세에서 60세로 연장된다. 정부로선 고용연장과 함께 신규채용도 강구해야 한다. 올해 초 공공기관 근로자들은 ‘법에 의해 정년을 연장받았는데, 왜 임금피크제로 임금을 삭감하느냐’며 불만이 컸다. 신규채용과 비용부담을 정부가 모두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추진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다. 올해 7월 말에 현황을 파악해보니 313개 기관 중 12개 기관만 임금피크제 도입에 합의한 상태였다. 내년부터 정년이 연장되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하는데 앞이 안 보였다. 8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발표가 있었다. “금년 중으로 전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도입을 완료하겠습니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기관장도 적극 나서 설득했고 노조도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하고 동의했다.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몇 가지 사항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첫째, 많은 사람이 “왜 국민에게 부담을 돌리느냐”며 불만을 터뜨린다. 임금피크제는 청년 일자리를 추가로 늘리면서 비용은 고령자가 분담하는 방식이다. 세대 간 일자리를 나눈다는 큰 틀 안에서 고령자의 인건비 절감을 통해 청년의 일자리 비용을 충당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재정을 투입해서 인건비를 충당한다면 결국 국민에게 세금부담을 안기게 된다.
둘째, 청년 고용효과 수준이다. 매년 공공기관은 1만7000명 정도 신규채용을 한다. 하지만 정년연장으로 인해 내년에는 4400여 명이 퇴직을 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임금피크제가 없으면 그만큼 신규채용이 줄어드는 것이다.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4400여 명은 결코 적지 않은 수다. 셋째, 일부에서는 임금피크제로 고령자의 임금이 줄어든다고 청년 고용을 담보할 수단이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를 충분히 감안해 정부는 이번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에 관련 규정을 마련했다. 정년 연장자 수만큼 정해진 목표에 따라 신규채용을 하지 않으면 관련 인건비를 삭감하도록 했다. 신규채용을 담보할 확실한 연결고리가 있는 것이다.
임금피크제는 이제 첫 발걸음을 뗐다. 아직 할 일이 많다. 신규채용이 현장에서 잘 이뤄져야 하고, 성과에 맞는 임금체계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또 정년 연장자들을 ‘뒷방 늙은이’로 만들지 않기 위해 회사와 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적합한 업무를 찾아내야 한다. 부디 임금피크제가 장년층과 청년 모두에게 꿈과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