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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북카페]헤밍웨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 삽화가 있는 ‘세계인권선언’

입력 | 2015-12-21 03:00:00

파리테러 이후 날개 돋친 책




11·13 프랑스 파리 테러 후 판매량이 급증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회고록 ‘파리는 날마다 축제’(왼쪽)와 1968년 유엔총회의 ‘세계인권선언’ 표지. 동아일보DB

파리 시민들이 테러에 저항하는 방식 중의 하나는 바로 ‘책’이다. 야만의 불길이 거셀수록 지성의 뿌리로 돌아가 해법을 찾는 것이다.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한 ‘11·13 파리 테러’ 직후 프랑스에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가 3주 만에 12만 부가 팔렸다. 올해 1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벌인 시사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때에는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가 볼테르의 ‘관용론(Le Trait´e sur la tol´erance)’이 시민들의 ‘지성적 저항’을 상징하는 책으로 떠올랐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50년, ‘관용론’은 무려 250년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테러가 고전 작품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1921년부터 1926년까지 미국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파리 특파원으로 살았던 헤밍웨이가 썼던 소설 형식의 자서전이다. 가난한 젊은 작가의 눈에 비친 파리의 거리와 식당, 술집에서의 일상이 따뜻하게 그려졌다. 특히 파리에서 활동하던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제임스 조이스와 시인 에즈라 파운드와의 만남이 상세히 기록돼 있어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소재로도 활용됐다.

테러 직후 BFM TV와 인터뷰한 여성 변호사인 다이엘르 씨(77)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이 겨냥한 것은 프랑스식 생활 방식과 문화”라며 헤밍웨이의 책을 읽을 것을 제안했다. 이후 레퓌블리크 광장, 카리용 카페, 바타클랑 극장과 같은 파리 테러를 추모하는 장소에서 꽃과 촛불 사이에 ‘파리는 날마다 축제’ 책이 수없이 놓여지고 있다. 이 책은 ‘나는 테라스에 있다(Je suis en Terrase)’라는 슬로건, 존 레넌의 노래 ‘이매진’과 함께 상처를 입은 파리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다.

또한 196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La D´eclaration universelle des droits de l‘homme)’도 서점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책은 원래 샤를리 에브도 테러 1주년을 앞두고 르셴 출판사가 32명의 화가들이 삽화를 그려 넣어 편집한 것. 그런데 11·13 파리 테러 이후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벌써 20만 부가 인쇄됐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존엄하며,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세계인권선언의 30개 조항이 삽화와 함께 소개돼 있다. 삽화가 들어간 고급 양장본은 14.9유로(1만9000원)이지만, 96쪽짜리 문고판은 2.5유로(3200원)에 불과하다. 파비엔 크리겔 ‘르셴’ 편집장은 “세계인권선언은 야만에 대항하는 우리의 방패이며, 인간성을 저버리는 사상에 대항해 싸우는 도구”라며 “누구나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세계인권선언을 출판하게 됐다”고 말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