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DRIVEN] 람보르기니 우라칸 LP580-2
슈퍼카는 성능 디자인 가격 3가지 요소가 일반 자동차를 훌쩍 뛰어넘는 비현실적인 존재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수많은 슈퍼카의 사진과 영상을 접하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슈퍼카를 가질지 모른다는 환상에 빠질 수도 있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정작 슈퍼카를 만드는 회사 대표마저 슈퍼카를 구입하는 사람들을 미치광이(Crazy)로 표현했을 정도다. 루카 디 몬테체몰로 전 페라리 회장은 2008년 금융위기 때 “우리에게는 위기가 아니다. 연간 생산하는 페라리 6000대를 사줄 미치광이는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구입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뭘까. 도박과 주식 다음으로 빠르게 자산 감소를 경험시켜 주는 ‘요물’이기 때문이다. 5억 원짜리 슈퍼카는 5년 뒤 절반 값이 된다. 또 매년 1000만∼2000만 원의 보험료와 세금을 합치면 연간 7000만 원은 지불해야 슈퍼카를 주차장에 세워둘 수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오히려 이런 점이 슈퍼 리치들의 구매욕을 더욱 자극한다.
후륜 구동 우라칸의 미친 성능
람보르기니는 1998년 아우디 산하로 들어간 뒤 4륜 구동 슈퍼카를 주력으로 생산해 왔다. 엄청난 출력을 쉽게 꺼내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너무 안정적이고 동적 특성이 밋밋해서 운전 재미는 후륜 구동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정판이나 레이싱 전용으로만 후륜 구동 모델을 내놓던 람보르기니는 우라칸을 신차로 내놓은 지 1년 만인 올해 후륜 구동 LP580-2를 공개했다. 최고 출력 580마력은 오로지 뒷바퀴를 굴리는 데 사용되기 때문에 4륜 구동인 ‘LP610-4’보다 다이내믹한 운전이 가능하다.
안전장치를 끄지 말라는 주의사항 하나만 전달받은 뒤 바로 도하의 로사일 서킷(5380m)으로 우라칸을 몰고 들어갔다. 잠깐 차의 특성을 파악한 뒤 곧바로 끝까지 가속페달을 밟았다. 등 뒤에 앉아 있는 10기통의 엔진은 맹수의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1km 직선 구간의 3분의 2 지점에서 생각보다 빠르지 않다는 실망감에 ‘시속 180km나 될까’ 하고 속도계를 보니 시속 264km. 후륜 구동이라 4륜 구동 모델에 비해 직진 안정감도 조금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성급한 예측이었다. 낮은 무게 중심에다 우라칸을 섹시하게 감싸고 있는 공기역학 구조물들이 고속으로 올라갈수록 차체를 바닥으로 내리눌러 타이어와 노면을 밀착시켜 줌으로써 구동 방식과는 상관없이 비현실적인 안정감을 가능하게 했다.
날카로워진 핸들링
우라칸 4륜 구동은 커브를 들어갈 때 차의 앞 머리 부분이 날카롭게 반응하지 않는다. 물론 일반 승용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하지만 경쟁 모델이었던 후륜 구동 페라리 ‘458이탈리아’에 비해서 무딘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LP580-2는 스윽 베일 듯한 면도날 같은 예리함을 품고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고 코너를 향해 운전대를 돌리면 차의 앞머리가 스르륵 원하는 쪽을 향하고 후륜은 미세하게 바깥쪽으로 미끄러지며 커브를 돌아나가기 딱 좋은 자세를 취한다. 일부러 운전대를 급하게 돌려 차의 밸런스를 깨면 기분 좋게 약한 드리프트 주행이 일어난다. 4륜 구동에선 맛보기 힘든 기분이다. 운전자가 차의 움직임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여지를 주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짜릿한 기분도 주행 모드를 ‘코르사(Corsa·레이스)’에 맞춰 놓고 한계 상황까지 몰아붙여야 경험할 수 있다. 적당히 빠르게 달려서는 그저 힘세고 말 잘 듣는 착한 ‘황소’에 올라탄 기분일 뿐이다. 람보르기니는 후륜 구동 모델임에도 커브길에서 일반 승용차가 넘볼 수 없는 안정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슈퍼카, 생각보다 편안한 스포츠카
15년 전만 해도 슈퍼카를 탄다는 것은 고통에 가까운 일이었다. 오직 수동변속기에 무거운 클러치 페달, 까다로운 운전성, 쇼핑 카트를 탄 것 같은 승차감이 운전자를 괴롭혔다. 하지만 최근 슈퍼카들은 자동변속기에다 웬만한 스포츠카보다 더 좋은 승차감을 제공하고 정교한 전자제어 시스템으로 출력 제어도 쉬워졌다. 과속방지턱을 쉽게 넘어가도록 전륜 차고를 높이는 장치도 대부분 들어 있다.
슈퍼카만의 조작 방식도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람보르기니와 페라리에는 기어레버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운전대 뒤쪽 좌우에 붙은 패들시프터를 둘 다 당기면 중립(N)이고, 출발하려면 오른쪽 패들을 당겨 1단에 놓아야 한다. 후진은 ‘R’이라고 적힌 버튼이나 레버가 따로 붙어 있다.
LP580-2를 포함한 람보르기니 모델들은 운전대 아랫 부분에 있는 빨간색 버튼으로 주행 스타일에 따라 ‘스트라다(일반도로)’, ‘스포츠(스포츠드라이빙)’, ‘코르사’를 선택할 수 있다. 엔진과 스티어링 반응과 기어변속 스피드, 엔진 사운드, 서스펜션 강도가 모두 바뀐다. 슈퍼카의 이런 메커니즘과 성능은 실존하는 게임 머신 혹은 시동키만 돌리면 탈 수 있는 롤러코스터처럼 느껴지게 한다. 우라칸 LP580-2는 내년 초 3억 원 안팎의 가격으로 국내에 출시될 예정이다.
도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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