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시작된 귀농·귀촌 열풍은 전원생활의 화두를 ‘힐링’에서 ‘경쟁’으로 바꾸어 놓았다. 사진은 한겨울의 목가적인 전원 풍경.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겨울 비수기에도 펜션 시설물을 보수·관리하고요. 매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 올리고 일일이 답글을 달아줍니다. 여유는 잠깐이고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바로 도태됩니다.”(귀촌 3년 차 P 씨·54·경기)
애초 귀농이든 귀촌이든 1차적인 목적은 자연 속에서 전원생활을 통해 여유와 힐링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L 씨와 P 씨의 말처럼, 실제 살아보면 여유와 힐링 대신 도시 못지않은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러 TV 프로그램에서 앞다퉈 보여주는 낭만적 전원생활과는 사뭇 다르다.
“12년 전 시골로 들어와 죽어라 농사를 지었지요. 그 후유증으로 건강을 많이 해쳤어요. 이제 농사를 내려놓으니 몸은 편한데 뭘 해서 먹고살지 걱정이네요.”(귀농 12년 차 C 씨·59·강원)
“그동안 연금에만 의존해 살아왔는데 물가는 계속 오르고 씀씀이는 그대로여서 늘 불안해요. 요즘 소득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농사일을 찾고 있는데 나이도 그렇고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것 같아 사실 겁이 납니다.”(귀촌 11년 차 K 씨·69·충남)
이렇듯 10년 이상 농사를 지어온 귀농인은 물론이고 연금 생활을 해온 귀촌인도 앞으로의 전원생활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지는 못한다.
베이비부머(1955∼63년생·712만 명 추산)의 은퇴와 맞물려 2009년 불붙은 귀농·귀촌 열풍은 해가 갈수록 더 뜨겁다. 2015년 귀농·귀촌 인구는 사상 최대를 기록한 2014년(4만4586가구·8만855명)을 뛰어넘어 총 5만 가구, 10만 명을 상회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근래 들어선 귀농창업, 6차산업 창업 경쟁이 가세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말 현재 농업법인(영농조합법인·농업회사법인)은 1만6482개로 전년 대비 13.3% 늘었다. 이 중 농업생산법인은 8.2% 늘었지만, 귀농·귀촌인의 진출이 쉬운 가공법인과 유통법인은 각각 14.2%, 12.2%나 증가했다.
한 농업 전문가는 “귀농창업, 6차산업 창업을 부르짖는데 수요는 요지부동인 상황에서 자꾸 창업한다고 해서 시장도 덩달아 커지는가”라고 반문한 뒤, “결국은 치열한 경쟁만 가중되면서 도시의 치킨점 창업-폐업의 전철을 답습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갈수록 경쟁이 가열되다 보니 먼저 들어온 귀농·귀촌인의 견제와 텃세도 심하다. 귀농 3년 차인 B 씨(53·강원)는 “먼저 들어온 선배 귀농·귀촌인들이 새로 진입하는 이들을 배척하고 원주민보다 더 텃세를 부리는 사례도 없지 않다”고 꼬집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각종 귀농·귀촌 단체나 모임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내부 경쟁과 갈등 또한 심화되고 있다. 최근 충북 B 군에서는 귀농귀촌협의회의 차기 회장 선출 및 결산 처리를 놓고 폭행 사건이 빚어졌다. 전북 G 군 귀농귀촌협의회 임원선거에서는 부회장 3명 선출에 무려 7명의 후보가 난립하기도 했다. 심지어 귀농·귀촌과는 무관한 정치적 목적의 압력단체나 모임으로 변질되는 사례도 있다.
2016년은 정부와 각 지자체가 귀농·귀촌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시행에 들어가는 첫해다. 귀농·귀촌은 고령화와 공동화로 위기에 처한 농업·농촌에 있어 새로운 희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힐링 없는 경쟁은 다수의 패배자, 실패자만 양산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새해에는 ‘경쟁’ 대신 ‘힐링’이 다시 전원생활의 화두로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