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인공부화기 속 알이 흔들거렸다. 앵무새 사육이 취미인 버스기사 전모 씨(58)는 지난해 8월 인터넷 앵무새 사육 동호회를 통해 알게 된 최모 씨(31)와 신모 씨(42)에게 희귀종인 ‘홍금강 앵무새 알’ 30개와 인공부화기를 구입했다.
당시 이들은 “부화만 시켜주면 우리가 앵무새를 고가에 팔아 수익금을 주겠다”며 “부화에만 성공한다면 최소 250만 원, 키워서 팔면 마리 당 100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고 구체적인 금액까지 언급했다. 대신 앵무새 알 구입비와 해외 출장비 등을 요구했다.
전 씨는 이들의 말을 굳게 믿었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뿐만 아니라 친인척과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까지 몽땅 앵무새 알 구입에 투자했다. 부화에 성공한다면 충분히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 씨에게 앵무새 알은 ‘황금알’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전 씨가 애지중지하며 키운 알에서 나온 것은 병아리였다. 나머지 29개는 아예 부화조차 할 수 없는 무정란 계란이었다.
전 씨가 항의하자 이들은 “우리도 수입업자에게 속았다. 외국에 나가 직접 앵무새를 사다 주겠다”고 둘러댔다. 실제 올해 3월 이들이 태국에서 밀반입한 홍금강 앵무새 한 마리를 건네받았지만 며칠 못 가 폐사했다. 그해 4월 이들은 다른 앵무새를 구해주겠다고 약속하고 태국으로 출국했지만 7개월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제서야 사기를 당했다는 걸 알아차린 전 씨는 지난달 13일 이들을 경찰에 고소했다.
서울 은평경찰서는 전 씨에게 앵무새 알과 앵무새를 구해주는 대가로 16회에 걸쳐 총 2억 원을 가로챈 최 씨를 사기 혐의 등으로 구속하고 공범 신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2일 밝혔다. 2급 멸종위기 동물인 홍금강 앵무새는 환경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국내로 반입할 수 있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올 3, 4월 두 차례 걸쳐 각각 앵무새 4마리를 여행용 가방에 넣고 비행기에 들고 타는 수법으로 총 8마리를 밀반입했지만 전 씨에게 건넨 1마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질식했다고 진술했다.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