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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과 시립, 미술관들의 ‘사고뭉치 경쟁’

입력 | 2015-12-23 03:00:00

[2015 문화계 되감아 보기]<6·끝> 논란 양산한 미술계




9월 초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관에서 열린 ‘예술가 길드 아트페어’에 전시된 홍성담 작가의 아크릴화 ‘김기종의 칼질’.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 대한 테러를 옹호하는 투의 글을 그림 복판에 빼곡히 적었다. 동아일보의 단독 보도 뒤 논란이 일자 반나절 만에 철거됐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 한국을 대표하는 두 국공립미술관이 번갈아 논란거리를 쏟아 낸 한 해였다. 먼저 이슈가 된 쪽은 국립현대미술관. 2월 초 등록을 마감한 관장 공모 후보에 친박계 전 국회의원이 포함돼 ‘정(政)피아’ 논란이 일었다. 3월에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본 ‘가미카제’ 파일럿 맹세와 “진주만은 일본의 위대한 승리”라고 주장하는 도쿄 시민 발언을 담은 영상물을 기획전에 걸어 관람객의 공분(公憤)을 샀다. 유일하게 이 전시를 비판적으로 보도한 동아일보를 읽은 시민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자 서울시립은 “작품 메시지를 읽지 못한 오보”라는 설명 자료를 냈다. 》

6월에는 국현이 “관장 채용 전형 결과 적격자를 찾지 못했다”고 발표해 파문을 일으켰다. ‘부적격자’로 낙인찍힌 셈이 된 최종 후보 최효준 씨는 기자회견을 열고 임명권자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해 “학연에 집착한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서울시립은 9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얼굴과 목을 칼로 찔러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테러범 김기종을 독립투사 안중근 의사에 빗대 옹호한 그림을 기획전에 내걸어 범국민적 분노를 촉발시켰다. 동아일보의 단독 보도 반나절 만에 서울시립은 해당 그림을 철수했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리퍼트 대사에게 사과할 방법을 찾겠다”던 약속은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이 미 대사관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전달한 간략한 ‘유감’ 메시지로 지워졌다.

10월에는 천경자 화백이 미국 뉴욕에서 2개월 전 향년 91세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져 충격을 안겼다. 천 화백의 그림 93점을 기증받아 관리하는 서울시립은 언론 보도가 나간 뒤에야 “천 화백의 큰딸 이혜선 씨가 모친의 사망 사실을 비밀에 부쳐 달라고 요청했다”고 해명했다. 서울시립은 한동안 맏딸 이 씨와 나머지 유족 사이에서 불거진 모친 봉양과 유산 배분에 관한 진실 공방의 무대가 됐다.

외국인 관장이 필요하다는 분위기를 만들어 온 국현은 12월 14일 스페인 출신의 바르토메우 마리 씨를 선임했다. 그러나 그가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장 사임 직전에 일으킨 전시 검열 논란이 알려져 작가 800여 명이 “국제 예술계에서 비판받는 인물의 국현 관장 선임을 우려한다”는 성명을 내는 등 미술계에 적잖은 반발이 일었다.

임흥순 작가는 5월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인 최초로 본전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그는 불합리한 근무환경을 견디는 한국 여공들의 아픔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상 작품을 선보였다. 동아일보DB

그 와중에 글로벌 미술계와 시장에서 한국 미술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4월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대표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심사위원에 선정된 데 이어 곧바로 큰 희소식이 이어졌다. 5월 개막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임흥순 작가(46)가 한국인 최초로 본전시 은사자상을 받은 것. 수상작인 95분 길이의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위로공단’은 전통적으로 35세 이하 젊은 예술가에게 주어져 온 은사자상의 관례를 깨며 이번 비엔날레 최대 이변으로 주목받았다.

7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광복 70년 기념전’은 소장 작품을 맥락 없이 늘어놓는 데 그쳐 ‘관장 인사 파행의 여파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동아일보DB

지난해 강하게 일어난 단색화 열풍은 한층 위세를 떨쳤다. 3월 아트 바젤 홍콩 행사장 안팎에서 해외 컬렉터들의 높은 관심을 끈 단색화는 10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8년 만에 한국 현대미술 작품 경매 최고 낙찰가 기록을 경신했다. 김환기 화백의 1971년 작 점화 ‘19-Ⅶ-71 #209’가 3100만 홍콩달러(약 47억2100만 원)에 팔렸다. 그러나 같은 시기 서울 종로구의 한 화랑이 대표적인 단색화 작가 이우환 화백의 위작을 유통한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의 압수수색을 받는 내환(內患)도 겪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