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을 부수지는 못했지만 1800만 개의 금을 냈다.”
200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탈락한 힐러리 클린턴의 말이다. 유리천장은 여성 대통령이라는 금기를, 1800만 개의 금은 클린턴에게 표를 던진 경선 투표자의 수를 뜻했다.
이 표현은 올해 한국 문단에도 옮길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문예지의 폐쇄성이라는 유리천장이 부서지진 않았지만 드디어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문학비평 담론을 주제로 삼은 특집, 문인들의 작품 게재’는 문예지 대다수의 형식이었다. 그 자체로 순문학의 견고한 울타리이기도 했다.
그보다 일주일 전인 11일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문학과지성사 창사 40주년 기념식에선 ‘문학과사회’의 5세대 편집동인 명단이 발표됐다. 문학평론가 강동호 조연정 조효원 씨와 문화평론가 김신식 씨, 서평가 금정연 씨다. ‘문학이론을 포함해 현실과 역사와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이론적 상상력들을 발굴하고 독려하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게 5세대 편집동인들의 포부다. 양쪽 편집진은 대부분 30대다.
한국의 주요 문학출판사에서 출간되는 문예지의 편집위원에 문학평론가가 아닌 사람들이 포함됐다는 소식은 ‘유리천장에 균열이 생기는 모습’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국문과 출신의 비평가’는 문예지 편집위원의 암묵적 자격조건이었기 때문이다.
평론가 강동호 씨는 “국문학 전공의 강단 비평가들이 잡지를 만든다는 건 시효를 다했다. 최근의 문예지들은 독자와 소통하는 글쓰기를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문학이 1970, 1980년대 사회운동의 담론을 앞장서서 생산해 내던 시기, 문예지는 독자를 이끌며 호흡하던 매체였다. 그러나 이후 독자의 관심이 영화로, 대중음악으로, TV드라마로 확장되는 동안 문예지는 문인들과 문단 관계자들이 주요 독자인, ‘그들만의 잡지’가 돼버렸다.
문학평론가와 그렇지 않은 평론가 간 ‘케미’가 어떠하냐는 질문에 ‘문학동네’ 남다은 영화평론가는 “영역은 다르다 해도 서로의 글을 많이 읽어 왔다는 것을 확인했다. 미지의 세계에서 지도를 함께 그리는 느낌”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문학과사회’의 새 편집진은 디자인, 포맷뿐 아니라 제호를 바꾸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같은 세대가 공유하는 사회·문화적인 문제의식을 팀워크로 생산해 내리라는 점에서 기대를 갖는다.” 선배 평론가 이광호 씨(문학과지성사 3세대 편집동인)의 응원이다. 그 응원에 지지를 보탠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