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결혼을 강조한 로스차일드 가문의 문장.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이건 멘델의 유전법칙과도 얼추 비슷하다. 멘델은 자식 세대가 부모로부터 우성이나 열성 정보가 담긴 유전 형질을 전달받는 비율을 각각 50%로 봤다. 또 조상의 특징적 유전 형질은 당대(자식)에 나타나거나 잠복 후 손주 세대에 발현된다고 밝혔다.
그런데 자손이 친가와 외가의 기운을 절반씩 확률로 이어받는다는 동기감응론은 ‘위험한’ 사고체계로 변질되기도 했다. 신라의 골품제가 좋은 예다. 골품제는 고구려와 백제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유독 신라에만 고유했는데 그걸 두고 왕권 강화니 계급사회 유지니 하는 학설이 제기됐다. 하지만 풍수학의 눈으로 보면 쉽게 설명된다.
이런 흔적은 현대에도 발견된다. 지난 250년간 세계적 금융 재벌로 군림해온 로스차일드 가문이 그렇다. ‘사촌 간 결혼 장려’ ‘외척의 경영 참여 배제’를 유지로 삼을 정도로 가족순혈주의를 강조한 집안인데 그건 축적한 부를 외부인에게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런데 유대계의 이 가문이 구사한 풍수법을 보면 신라의 골품제 못지않게 명당 순혈론을 강조하고 있다. 5개 집안으로 구성된 로스차일드 가문이 구사한 음택과 양택을 살피자 한결같이 재물 명당 혈을 정확히 차지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것도 지기형(地氣形)으로 기운은 모두 균일했다. 유대계에도 나름의 명당 논리와 동기감응 전통이 이어져 내려왔음을 확인시키는 대목이었다.
후손이 친가와 외가 조상의 기운을 동등하게 받는다는 동기감응론이 조선왕조에서만은 심하게 변질됐다. 남성 위주의 유교적 세계관 확산이 그 배경이다. 풍수학에까지 부계 위주의 풍수 논리가 횡행해 모계로 유전되는 동기감응론이 무시되는 풍조가 만연한 탓이다. 이는 풍수학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조선의 역대 군왕이 최고의 지관을 동원해 명당에 음택을 조성했음에도 그 말로가 좋지 않은 것을 들어 제기한 명당 무용론이 그 요체였다. 모계 쪽 조상에서 이어져 내려온 유전정보를 무시하거나 인지하지 못해 그럴 것이란 생각은 해보지도 못한 채.
그렇다면 ‘외손발복(外孫發福)’이란 명당론도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부계 쪽의 음택(무덤)이나 양택(거주지)만 기준으로 삼아 백호(무덤 오른쪽 산줄기) 기운이 발달하면 딸(외손) 쪽이 번성하게 된다는 이론인데, 모계로 내려오는 기운의 영향력을 완전 배제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건 역으로도 추론된다. 터의 주인이 편안하고 활기차면 그 터 역시 그에 맞는 기운에 동조돼 생기를 띠게 된다는 논리다. 터 주인이 어떠한가에 따라 터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궂은일을 맞더라도 조상 탓, 터 탓만 할 건 아닌 듯하다. 내 터를 좋은 기운으로 스스로 바꾸겠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