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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 2박3일 쉬러 가요”

입력 | 2015-12-23 14:02:05

지호영 기자

경기 이천 성안드레아신경정신병원 전경과 원목실(위). 지호영 기자


주차장 앞은 바로 잔디밭이었다. 야트막한 언덕과 작은 연못, 굽이굽이 이어진 산책로가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 지나간 비 때문에 조금은 축축해진 겨울 공기 속을, 중년 남자 두 명이 천천히 걷고 있었다. 경기 이천 성안드레아신경정신병원 풍경이다. 신경철 성안드레아신경정신병원 진료부장은 “우리 병원에서는 입원 환자의 생활을 크게 통제하지 않는다. 보호가 필요한 일부를 제외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병실 안팎을 다닐 수 있다”고 했다.
병원 안 분위기도 그의 말대로였다. 하의로 환자복을 입은 걸 제외하면 의료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환자’들이 책을 읽고, 매점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벽면의 널찍한 창 너머로 평화로운 바깥 정경이 쏟아져 들어왔다. 창문 어디에서도 정신병원을 연상케 하는 쇠창살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박한선 성안드레아신경정신병원 정신과장은 이에 대해 “우리 병원 입원환자의 상당수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가벼운 정신질환을 치료하려고 스스로 입원을 결정한 이들”이라며 “사회에 복귀할 때까지 최대한 편안한 환경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직접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로 마음먹은 이는 퇴원 역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박 정신과장은 “환자가 퇴원을 원하면 바로 관련 절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한국 사회에서 정신병원은 오랫동안 수용과 감시의 다른 이름으로 통했다. 발작을 자주 일으키거나 폭력적 행동을 보이는 이가 구급차에 실려 들어가는 곳, 그리고 한 번 들어가면 영영 나올 수 없는 시설로 여겨졌다. 지난해 화제를 모은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도 주인공 지해수(공효진 분)는 남자친구 장재열(조인성 분)이 조현병을 앓는다는 걸 알고 그를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퇴원을 간절히 원하는 장재열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퇴원을 ‘허락’하지 않는다.
성안드레아신경정신병원은 이런 풍토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상당수 환자가 정신병원 입·퇴원을 제삼자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다. 장기 치료가 필요한 중증 정신질환자는 출입통제시설이 있는 안전병동(폐쇄병동)에서 생활하지만, 그곳에도 쇠창살과 폐쇄회로(CC)TV는 없다. 좀 더 많은 의료진이 좀 더 철저히 환자를 돌볼 뿐이다. 이런 노력으로 성안드레아신경정신병원은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인권상을, 2013년에는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 변화는 점점 다른 병원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50대 A씨는 불면증과 불안장애에 시달리다 정신병원 입원을 택했다. 아내와 사별한 뒤 딸 한 명을 키우며 살던 A씨는 지난해 딸이 학교에서 성적우수자로 뽑혀 해외 고교에 교환학생으로 갈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쁜 일이었지만 딸조차 없이 혼자 지낼 생각을 하니 불안감과 불면이 더욱 깊어졌다. 이런 사정을 세상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다 입원을 선택한 것이다. 다행히 그는 약물치료와 상담 등을 받은 뒤 일주일 만에 퇴원했고, 이후 마음이 힘들 때면 주말을 이용해 정신병원에 머문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가벼운 정신질환은 당뇨나 고혈압처럼 꾸준히 관리하면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질병이다. 짧은 기간 입원치료로도 호전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힘들 때는 병원을 찾는 게 좋다”고 입을 모은다.
주부 B씨도 부부싸움 후 우울감에 휩싸여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결혼 전 가벼운 우울증을 앓던 그는 일상적인 다툼조차 견디지 못했고, 남편의 권유로 2박3일간 정신병원에 입원해 안정을 찾은 뒤 약물치료를 하고 있다. 11월에는 방송인 정형돈 씨가 불안장애 증상으로 활동을 중단한 뒤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짧은 입원 후 건강한 사회 복귀보건복지부의 ‘정신의료기관 입원 유형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정신의료기관 입원 환자 중 자발적 입원자 비율은 32.4%로, 2007년 11.6%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 이 비율이 30%를 넘은 건 관련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한 뒤 처음이다.
현행 정신보건법은 정신병원 입원 방식으로 △환자가 스스로 입원신청서를 제출하는 것(제23조) 외에 △보호의무자 2명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명의 동의에 의한 것(제24조)과 △시장, 군수, 구청장의 결정에 의한 것(제25조) 등을 규정하고 있다. 흔히 23조를 ‘자의입원’, 24조를 ‘동의입원’, 25조를 ‘행정입원’이라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가장 흔했던 건 ‘동의입원’이었다.
반면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정신장애인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한 국가보고서’(인권위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의 경우 자의입원 비율이 80%가 넘는다. 박한선 정신과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동의입원 비율이 높은 나라는 없다. 정신병원을 치료 목적보다 격리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꼬집었다. 인권위보고서를 봐도 우리나라의 정신병원 평균 입원 일수는 233일로 이탈리아 13.4일, 스페인 18일, 독일 26.9일, 프랑스 35.7일 등 OECD 회원국에 비해 상당히 길다.
전문가들은 최근 이런 추세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걸 한목소리로 환영한다. 식이장애 환자를 많이 치료해온 김준기 ‘마음과 마음 식이장애 클리닉’ 원장(정신과 전문의)은 “연예인이 자신의 정신질환을 솔직히 고백하는 사례가 늘면서 대중의 인식도 차츰 변화하는 걸 느낀다. 상당수 정신질환은 초기에 병원을 찾으면 장기 입원할 필요 없이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는 만큼, 마음에 이상을 느낄 때는 주저하지 말고 병원 문을 두드리면 좋겠다”고 밝혔다(상자기사 참조).
보건복지부가 5년 단위로 실시하는 정신질환 역학조사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정신질환 경험 비율은 27.6%에 달한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우울증선별도구(PHQ-9) 문항을 이용해 조사한 우리나라 성인의 우울장애 유병률도 6.6%였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가 사회적 불이익 등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신병원 진단을 꺼리는 게 현실이다. 박한선 정신과장은 “최근 자영업자와 주부, 의사, 변호사 등 사회적 시선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이들을 중심으로 정신병원 입원이 꾸준히 늘고 있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사라지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전력이 있어도 취업과 승진 등에 불이익을 받는 일이 사라지면 더 많은 이가 편안하게 정신병원을 찾아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