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사안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 역시 눈길이 가는 부분이다. 2014년 이후 이른바 ‘통일 대박론’이 큰 화제를 모았지만, 기이하게도 2015년 들어 국무회의와 수석비서관회의 발언에서의 등장 비율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 보일 정도로 적다. ‘통일’ 11회, ‘평화통일’ 6회, ‘통일준비’ 1회가 전부다. ‘통일부’에 대한 언급 역시 1회에 그쳤다. 2015년 한 해 국무회의 석상에서조차 통일부의 존재감은 바닥이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경향은 8월 북한의 지뢰도발 사건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함께 쓰인 낱말의 뉘앙스가 그 이전과 이후로 크게 갈라지기 때문. 상반기에는 ‘대화’ ‘교류’ ‘협력’ 등이 함께 쓰였지만 사건 이후로는 ‘도발’ ‘위협’ ‘적대적’ 등이 주로 등장한다. 이 시점을 계기로 남북관계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 틀이 일부나마 남아 있던 대화와 협력 추진에서 군사적 위협 대비로 크게 달라졌음을 방증하는 것. 이러한 경향은 이후 남북이산가족 상봉과 당국회담이 추진되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앞으로도 현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판단되는 근거다.
안보 관련 사안 가운데 눈에 띄는 또 다른 대목은 하반기 최대 현안이던 한국형전투기(KFX) 사업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문제의 도화선 노릇을 한 차기전투기(FX) 사업에 대해서도 말한 적이 없다. 방위산업 비리 문제에 대해서는 상반기 두세 차례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전체 비중으로 보자면 극히 낮을뿐더러 부수적인 설명에 가깝다. 주요 발언에서 정부 정책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으려 하는 박 대통령 특유의 발화 스타일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테러’다. 1~10월에는 금융권에 대한 사이버테러 위험 정도로만 드물게 등장하던 언급이 11월 이후 폭증한 것(13쪽 그래프 참조). ‘테러방지법’으로 한정해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11월 24일 국무회의 발언이 처음일 뿐 이전에는 등장한 적이 없기 때문. 물론 이는 일차적으로 11·13 프랑스 파리 동시다발 테러의 영향으로 풀이할 수 있지만,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 등 다른 주요 사건 직후에는 언급이 없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충분한 설명은 못 되는 듯하다. “14년간 국회 계류 중”이라는 박 대통령의 말과 달리 11월 24일 이전에는 이 문제에 대해 대통령 역시 별다른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오히려 눈에 띄는 것은 ‘국회’의 등장 비율과 ‘테러’의 등장 비율이 시계열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9월과 12월 두 차례 정점을 찍으며 다른 단어들에 비해 압도적인 비중을 보이게 된 패턴이 완전히 똑같다. 이러한 특징은 박 대통령이 ‘테러’를 대부분 국회의 ‘임무 방기’를 비난하는 차원에서만 언급했음을 의미한다. ‘노동개혁’ 등 패턴이 유사한 다른 단어들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IS(이슬람국가)도 우리가 테러방지법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는 박 대통령의 언급이, 실은 국회 법안 통과를 압박하기 위한 대국민 홍보용일 공산이 커 보이는 이유다.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