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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유가, 2014년엔 울상이더니… 정유업계 2015년 5조 영업익

입력 | 2015-12-24 03:00:00

4社 2011년 이후 최대 호황




SK이노베이션은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가 예상되는 내년에 오히려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다. 지난해 국제유가 급락에 따른 재고 손실로 37년 만에 처음 적자를 기록했지만 올해 저유가가 장기화되며 원유 수요가 확대되고 중국과 중동의 정제설비 증설이 지연되면서 실적이 빠르게 회복됐다. SK이노베이션은 내년에도 유가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며 글로벌 합작, 인수합병(M&A) 등에 2조 원 정도를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해와 올해는 경영 악화로 시설 유지를 위한 기본 투자만 진행했다.

국내 정유업체 4사는 올해 약 5조 원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사상 최대 규모의 영업이익(7조2079억 원)을 냈던 2011년 이후 최대치다. 이들 업체에는 “내년이 저유가를 등에 업고 호황을 누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공감대가 퍼져 있다. 정유업계에서 내년에 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를 자회사로 둔 GS에너지의 상장 가능성을 거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전문가들 “유가 더 떨어진다”

국제유가는 21일(현지 시간)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31.98달러까지 떨어져 2004년 6월(31.67달러)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골드만삭스 등 증권가는 내년에 유가가 배럴당 20달러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이달 초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 합의에 실패했고, 이외에도 석유 공급 과잉을 유발할 상황이 많은 데다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도 예고됐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3일(현지 시간) “내년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5∼15달러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제유가전문가협의회를 열고 국제 석유시장 동향과 영향을 긴급 점검한 결과 “내년 국제유가는 올해와 비슷한 배럴당 40∼50달러 수준에서 형성되겠지만 더 급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고 이날 밝혔다.

정유업체들은 내년에도 정제마진이 좋을 것으로 기대한다. 조달할 수 있는 원유가 더 많아지면서 추가 가격 인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제마진은 원유를 정제해서 나온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가 운임 등을 제외한 이익이다.

우선 이란이 핵 개발 의혹에서 벗어나며 경제 제재 조치가 풀릴 예정이다. 전 세계 원유 매장량 4위인 이란의 원유 수출이 확대된다는 뜻이다. 비잔 남다르 장게네 이란 석유장관은 최근 “제재 해제 시 즉시 하루 50만 배럴, 내년 말에는 100만 배럴을 증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란은 2011년에는 하루 370만 배럴을 생산했지만 제재 시작(2012년 7월) 뒤인 2013년에는 260만 배럴까지 감소했다.

이란이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타 유종 대비 가격 할인 폭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 자연스럽게 다른 중동산 원유의 가격 경쟁도 심화될 수 있다. 사우디아람코가 대주주인 에쓰오일을 제외한 SK이노베이션과 현대오일뱅크는 현재 약 5∼10%인 이란산 원유 비중을 더 늘릴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미 실무진에서 관련 논의를 시작했다.

미국은 40년 만에 원유 수출에 나선다. 미국은 1975년 석유 파동을 겪으며 안보 차원에서 원유 수출을 금지해왔다. 셰일가스 붐으로 원유 공급이 넘쳐났지만 판매가 제한된 탓에 정유업체들은 최대한 생산을 억제해왔다. 골드만삭스는 수출 재개로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2030년에 지금(하루 938만 배럴)보다 평균 120만 배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충재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원유 수출 자율화로 국내 정유 4사의 정제마진이 배럴당 1달러 개선되면 연간 영업이익이 1조2000억 원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정유업체 “곧 끝날 즐거움”

그러나 정유업체들은 저유가를 마냥 즐길 수만은 없다는 의견이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든가 “웃을 날은 길어봐야 내년까지”라는 말이 나온다. 저유가가 장기화하면서 세계 경제의 디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어서다. 특히 중국 등 대부분 국가의 물가가 하락하고 있어 가계와 기업의 경제 심리도 위축되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저유가 장기화가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올해 금액 기준으로 한국의 수출은 11개월 연속 감소했다. 석유화학 업종의 수출 단가는 떨어지고 산유국의 조선 건설 철강 수요가 감소한 탓이다.

한 정유업체 관계자는 “지금은 가격 하락으로 일시적으로 원유 수요가 늘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좋은 상황에서 벌어진 게 아니라 디플레이션이 일어나면 수요는 갑자기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예나 yena@donga.com·김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