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정본 백범일지’ 출판회에 참석했다가 읽은 안내문이다. 출판기념회에 자주 참석해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책값을 준비했던 나는 책을 모셔오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그 대신에 깨달음을 얻었다. 나도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지만 이제까지 책을 모셔간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출판 경과보고를 들으면서 ‘모셔간다’는 표현이 결코 지나치지 않음을 알았다.
열화당 출판사 이기웅 대표는 처음에는 다섯 권만 만들어서 ‘안중근기념 영혼도서관’에 첫 번째 책으로 헌정할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세상에, 다섯 권밖에 배포되지 않을 책을 위하여 여러 명의 전문가가 3년을 꼬박 매달리다니 그런 계산 없음이 놀랍거니와 돌아가신 분에게 정성껏 염(殮)을 해드리는 심정으로 책을 만들었다는 진정성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다행히 다섯 권만 만드는 것은 아쉽다는 염꾼(?)들의 건의에 따라 200질을 만들게 되었지만 말이다.
백범 선생의 하얀 두루마기를 연상케 하는 순백의 정갈한 책 두 권. 돌아가신 백범 선생도 흐뭇하시겠지만 그 책을 만든 사람들이 더 행복했을 것 같다. 3년 동안 백범 선생의 말씀 속에서 살았으니 얼마나 가슴 벅차고 뜨거웠을까. 자기가 하는 일의 결과물에 ‘모셔가라’고 말할 수 있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일일 것이다.
파주출판도시에서 송년에 딱 맞춤한 시간을 보낸 셈이다. 올 한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얼마나 엄벙덤벙 대충 시늉만 하면서 시간을 낭비했는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내가 하는 일에 더 정성을 쏟자, 더 오래 가슴에 품자. 백범일지의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벌써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