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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빠삐용 소녀’의 2cm 집

입력 | 2015-12-25 03:00:00


임상심리학에서 사용하는 HTP 테스트는 그림으로 마음을 읽는 검사다. 1948년 심리학자 존 벅(1903∼1983)이 개발했다. 누구에게나 친숙한 집(House)-나무(Tree)-사람(Person)을 A4 용지에 그리게 하고 다양한 질문으로 그림에 투사된 심리적 상태와 성격을 분석한다. 지난해 ‘무한도전’, 올해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이 테스트가 등장해 화제가 됐다.

▷언어 표현이 서툰 아이들에게 HTP 검사는 유용하다. 아이가 말하지 않아도 그림이 아이의 내면을 보여준다. 집 그림으로 부모와 어떤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지를, 나무 그림에서 자아 이미지를 파악한다. 사람 그림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심리를 보여준다. 가령, 뿌리 없이 나무만 그렸다면 현실을 지탱할 힘이 없다는 것으로, 지나치게 뾰족한 나뭇가지를 그렸다면 공격성으로 풀이된다.

▷그림의 크기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 친아버지로부터 장기간 학대를 당한 열한 살 A 양은 소아정신과 전문의 출신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과의 면담에서 가로 2cm, 세로 3cm의 조그만 집을 그렸다. 다른 종이에 그린 크리스마스트리도 아주 작다. 집과 트리는 종이 왼쪽에 그려져 있다. 차병원 미술치료클리닉 김선현 교수는 “종이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 그림들은 심리적 위축감과 고립감을 나타낸다”며 “특히 왼쪽에 치우친 형태는 과거에 고착된 정서를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12일 인천 집에서 가스배관을 타고 탈출한 ‘빠삐용 소녀’의 구조 당시 키와 몸무게는 120cm에 16kg이었다. 가족의 학대로 7세 수준에 성장이 멈춘 아이의 그림은 보통사람 눈에도 예사롭지 않다. 고통의 시간에 대한 소리 없는 아우성 같아 가슴이 저려온다. 1년 전 아빠가 남긴 피자 부스러기를 먹어본 기억으로 피자가 제일 먹고 싶고, 크리스마스에 인형 선물을 기다리는 소녀.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인간의 원초적 소망을 잔인하게 짓밟은 사람들이 원망스럽다. 아이가 학대의 시간을 잊고 세상과 다시 소통할 수 있기까지 꾸준하게 따스한 관심을 보내는 것, 이제 우리들의 몫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