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섭 씨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면서 노동이 가진 힘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결혼을 하고 아들이 태어났지만 도저히 대책이 서지 않아 그는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새벽에 나가 매장에 들어오는 150여 개의 물류 박스를 차에서 내리고 그것들을 창고에 다시 옮겨 쌓는 일이었다. 최저 시급 5580원에, 월 60시간 이상 일하면 직장가입자로서 4대 보험이 보장되었다. 이렇게 해서 새벽엔 맥도날드 아르바이트, 낮엔 시간강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몸은 고달팠지만 이것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었고, 부모님에게 건강보험 혜택도 드릴 수 있었다.
그가 이번 학기를 끝으로 대학을 아주 떠났다.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도 함께 그만뒀다. 맥도날드는 그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겠지만, 대학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맥도날드에는 다시 가게 될 수도 있지만 대학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그는 말한다. 그에게 “대학은 정말 차가운 곳이다”. 그는 자신을 ‘노동자’도 ‘사회인’도 아닌 채 대학을 배회하는 유령이었다고 자조했다. 그리고 ‘309동 1201호’라고 숫자로만 쓰던 자신의 이름도 실명으로 밝혔다.
그에게 대학은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그런데 책을 쓰고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대학 밖에 더 큰 강의실과 연구실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전까지는 대학만이 지식을, 또는 학문을 생산한다고 생각했는데 대학 밖의 세상에 더 큰 강의실과 연구실이 있고 이 연구실에 더 큰 ‘학문’의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체험이 그에게 노동의 가치를 깨우쳐 주었다는 사실이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면서 노동이 가진 힘을 알게 됐습니다. 노동에는 모든 사람들의 삶에 공감하게 만들어주는, 타인의 입장에서 사유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건강한 힘이 있더군요.”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의를 독점한 듯 사회를 마구 조롱하고 호령하던 대학 사회의 알량한 ‘지식’이 하찮고 비루한 ‘현실’ 앞에서 얼마나 위선적이고 무기력한 것인지, 그의 글은 생생한 몸의 언어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그어 놓은 사소한 한 줄의 금은 아마도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작지만 힘 있는 탈주선이 될 것 같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