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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인간을 위로하는 마법의 액체… 술을 해독하다

입력 | 2015-12-26 03:00:00

◇프루프 술의 과학/아담 로저스 지음·강석기 옮김/336쪽·1만5000원·MID




한때 취재원들과 술을 자주 마신 적이 있다. 그때 술에 대한 심리가 ‘스톡홀름 신드롬’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 술에 약한 체질이라 다음 날이면 남들보다 더 고약한 숙취에 시달렸다. 급기야 건강검진 때 지방간 수치를 확인하면서 긴장하게 됐다. 술이 원수다 싶었지만 어느 순간 오랫동안 술을 마시지 않으면 뭔가 아쉬운 마음에 집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가해자를 원망하다 결국 그와 심리적으로 공감하고 유대감을 이루는 인질처럼 말이다. “술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우리 몸과 뇌의 행동을 이해하는 결정적 지점”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이 점에서 일리가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술을 마시는 게 결코 단순한 행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술을 빚는 단계부터 이를 마시고 숙취에 이르는 과정 전반을 생물학과 화학, 의학, 심리학 등 과학을 동원해 흥미롭게 풀어낸다.

술의 발효를 일으키는 효모의 발견이 생화학의 등장으로 이어진 과정이 특히 눈길을 끈다. 곡식이 발효를 거쳐 알코올 성분으로 변한다는 사실은 수천 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효모의 존재는 불과 100여 년 전에야 확인됐다. 재밌는 것은 당시 효모의 작용 기제를 놓고 화학자와 생물학자가 상대방을 비방하며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는 사실이다.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물질을 합성해 내는 데 골몰한 화학자들은 효모가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주장을 마치 사이비 과학처럼 여겼다.

하지만 물리학에서 빛의 입자론과 파동론 논쟁처럼 효모 논쟁도 두 시각이 모두 옳았음이 결국 드러났다. 살아있는 효모 세포 안에 들어 있는 특정한 화학물질이 발효를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효모 세포 안 화학물질이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 규명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과학 분야인 생화학이 태동했다.

효모가 술을 만드는 과정은 진화론 관점에서도 의미 있는 고찰이 가능하다. 마치 사람 손에 길들여져 늑대와 구분되는 유전 변이를 일으킨 개처럼 효모도 끊임없는 개량을 거쳤다는 것이다. 예컨대 덴마크 유명 맥주회사인 칼스버그는 맛있는 라거 맥주가 담긴 술통의 효모를 추출하는 데 지속적으로 공을 들였다.

양조 과정은 비교적 과학적으로 규명됐지만 숙취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숙취의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다 보니 해소법도 확실치 않다. 술을 깨는 데 헛개나무나 콩나물이 좋다는 식의 구전만 분분할 뿐이다.

단, 해장술의 효과는 어느 정도 과학적 근거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술에 포함된 극히 소량의 메탄올이 포름알데히드와 같은 유해물질로 분해되기 전에 또 다른 술이 몸에 들어가면 소변을 통해 메탄올 성분을 그대로 배출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술꾼들의 아침 해장술이 경험에서 우러난 삶의 지혜일 수도 있는 셈이다.

물론 아침 해장술만 믿고 계속 술을 마시다간 더 큰 해악에 시달릴 수 있다는 걸 저자는 분명히 경고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