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서 만난 수많은 얼굴은 우리 자신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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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지루함을 느낀다면 그건 당신 잘못이에요. 뉴욕 탓이 아니에요.”(1946년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해’의 주연 여배우 머나 로이)
지난해 전 세계에서 뉴욕으로 몰려온 관광객은 무려 5640만 명. 통계청이 2013년 기준으로 발표한 남한 인구 5021만 명보다 619만 명이나 많다.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벤치에 누워 있는 한 노숙자가 카메라를 향해 말한다. “저는 지금 여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에요.” 여대생처럼 보이는 젊은 백인 여성에게 물었다. “살면서 죄책감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엄마 아빠에게 ‘저 괜찮아요’라고 말할 때요.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에요.”
조직폭력배로 감옥에 10년이나 수감됐던 사실을 털어놓은 중년 남자, 어릴 때 성적(性的) 학대를 받았으나 지금은 미래를 내가 결정한다고 강조하는 젊은 여성도 나온다. 뉴욕 경찰(NYPD)을 욕하며 가운뎃손가락을 세운 흑인 청년들이 등장하고, 덩치가 너무 커서 ‘왕따’ 인생을 살아온 백인 남자가 처절한 고독을 하소연한다.
공원에서 팬티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던 인심 좋게 생긴 배불뚝이 백인 아저씨는 나름 터득한 삶의 철학을 알려준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고함치면 그 소리가 그에게 더 크게 들리나요, 당신에게 더 크게 들리나요. 화내면 당신만 손해예요. 저는 100세까지 살고 싶어요. 그래서 지난 40년간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다고요.”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 작가를 백악관에 초대했다. 대통령은 싱글맘으로 힘들게 살면서도 ‘너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어머니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어른이 돼서야 깨달았죠. 엄마도 회의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란 사실을 말이죠.”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