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28일 ‘위안부 담판’]
도쿄=장원재 특파원
하지만 이 발언 전후에 벌어진 상황은 전혀 딴판이었다. 이날 아침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일본 정부가 1억 엔(약 9억7000만 원) 규모의 새 기금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전했다. 다음 날 요미우리신문은 “한국 측에서 20억 엔(약 194억 원)의 기금 창설을 요청하고 있다”고 보도했고, 산케이신문은 “한국 측에 기금 공동 출자를 요청하는 안이 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협상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민감한 내용이 일본 정부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일본 언론을 통해 잇따라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일본 정부의 ‘언론 플레이’가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일본이 언론 플레이를 한다면 목적은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연내 타결을 요청한 것에 대해 일본이 성의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미국과 국제사회에 어필하려는 의도다. 이번에 타결이 안 돼도 ‘우리는 할 만큼 했다’는 계산이다.
일본은 이번에 위안부 문제가 ‘최종 해결’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합의문에 ‘최종적이고 되돌릴 수 없다’는 내용을 명기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또 미국 입회하에 한일 양측이 합의문에 서명하는 방안, 양측이 합의하면 미국이 환영 성명을 내는 방안까지도 거론되는 상황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교도통신은 협상이 타결될 경우 내년 3월 미국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 때 한일 정상회담을 열고 최종 해결을 확인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까지 끌어들이며 ‘최종 해결’에 집착하는 이유는 8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발표한 ‘전후 70주년 담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베 총리는 당시 “전쟁과 아무런 상관없는 우리 아이들과 손자,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전후 1세대인 자신이 사죄의 사슬을 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종 해결이라는 것이 위안부 문제에 추악한 대못질을 해 역사 속에 묻겠다는 의도라면 협상은 깨질 수밖에 없다. 이번 협상은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는 첫 단추가 돼야 한다. 합의 후에는 1993년 일본 정부가 고노담화에서 한 “역사 연구, 역사 교육을 통해 이 문제를 오래도록 기억하겠다”는 약속이 지켜져야 한다. 아베 총리도 고노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밝혔으니 당연한 일 아닌가.
생존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46명이 두 눈을 부릅뜨고 협상을 지켜보고 있다. 이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들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어떤 협상도 국민적인 공감을 얻기 어렵다.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아베 총리가 최종 해결을 보장받고 싶다면 ‘영기’보다 ‘마음의 힘’을 먼저 길러야 할 것이다. 언론 플레이와 기발한 묘수를 동원해 위안부 문제를 역사 속으로 흘려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착각이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