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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보재단 지원신청 희귀난치성질환자 27%가 ‘나홀로 투병’

입력 | 2015-12-28 03:00:00

금전적 고통-가정해체 등 삶 열악… 독거 질환자 30.7% 월세방 살아
국내 희귀질환자 2000여종 50만명… 정부 의료비 지원대상 138종 불과




“아픈 사람 한 명만 있어도 가세(家勢)가 기운다.”

평범한 주부였던 A 씨(47)는 두 아들을 키우며 이 말을 뼈저리게 되새기고 있다. 이제 중·고등학생이 된 두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쯤 ‘부신백질이영양증’ 판정을 받았다. 이 병은 신경계에 지방산이 쌓여 몸의 기능을 서서히 잃어가는 질환. 두 아들은 병의 진행을 늦추는 ‘로렌조 오일’을 먹으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두 아들이 복용해야 하는 오일은 한 달에 160만 원 분량. 각종 합병증 치료에도 돈을 쓰다보니 빚은 억대로 쌓여갔다. 부신백질이영양증은 모계 유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A 씨를 탓하면서 부부싸움도 잦아졌다.

국내에서는 약 50만 명이 2000여 종의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다. 정부가 의료비 지원 대상으로 지정한 질환은 전체의 10%도 안 되는 138종에 불과하다. 결국 90%의 다른 질환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셈이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이런 어려움에 처한 환자들을 돕고자 2011년부터 의료비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이 재단은 최근 의료비 지원사업에 신청했던 희귀난치성질환자 2769명을 대상으로 삶의 질을 분석했다. 난치병은 치료 자체도 어렵지만 A 씨처럼 그 과정에서 금전적 고통을 받는 이들이 많고 가정 해체까지 경험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가구 형태’다. 신청자의 27.2%는 독거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호자의 도움이 절실한 희귀난치성질환자 상당수가 혼자 살고 있다는 말이다. 그중 28.5%는 그 이유가 ‘이혼’이라고 답했다. 장기간 치료가 지속되면서 배우자에게 심적·금전적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난치성 환자가 혼자 살 경우 주거의 질이 떨어지는 사례가 많다. 독거 질환자 중 30.7%는 월세방에서 살고 있고, 지인이나 친척집에 얹혀사는 ‘무상 거주’ 역시 28.3% 수준이다. 고시원이나 모텔에 살고 있는 환자도 4.2%를 차지했다.

환자들은 대체로 정상적인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이 때문에 소득이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에서 의료비를 지원한 희귀난치성질환자들의 소득을 분석해보면 100만 원 이하로 버는 사람은 33.6%이고, 소득이 전혀 없는 사람도 12.7%나 된다. 소득이 300만 원을 초과하는 질환자는 9.1%에 불과하다.

이렇게 환자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 것을 방치한다면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우선 경제적 이유로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치료를 중단하거나 사망에 이르는 사람이 늘어난다. 결국 국가의 의료복지에 대한 불신을 낳게 된다. 환자나 보호자의 경제적 곤란은 가족 해체나 파탄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난치병 환자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현재 138종에 그치는 정부 의료비 경감 혜택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