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프로야구 필드닥터팀 이끄는 오주한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프로야구 LG 필드닥터팀을 이끌고 있는 오주한 교수가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연구실에서 LG 유광점퍼를 입고 글러브를 낀 채 야구공을 들어 보이고 있다. 야구광인 그는 “필드닥터팀이 다른 구단으로 확대되기 위해서 앞으로 LG가 더 잘돼야 합니다”라며 웃었다. 성남=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주심의 경기 시작 신호와 함께 오 교수의 야구장 일과도 시작된다. 파울볼에 맞은 관중부터 헤드샷을 맞고 그라운드에 드러누운 선수까지. 의사가 필요한 곳이면 경기장 어디든 출동하는 것이 오 교수의 일이다. 4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긴장은 9회 마지막 아웃카운트와 함께 풀린다. 집에 돌아가면 시곗바늘은 오후 11시를 넘기기 일쑤다.
오 교수의 이런 ‘사서 하는(?) 고생’은 2012년부터 시작됐다. “2000년 임수혁 선수가 야구장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을 때 영상을 보면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와요. 고개가 젖혀진 채로 들것에 실려 나가는데 기도 확보도 안 돼 있더라고요. 그런데 2011년 신영록 선수는 의사가 대기하던 축구장에서 심폐소생술을 받고 살았잖아요.” 오 교수는 국내 처음으로 견주관절 정형외과 전문의 출신 후배 13명과 필드닥터 팀을 꾸리고 의료 지원을 추진했다.
필드닥터들은 아찔한 순간에 가슴을 쓸어내릴 때가 많다. 2013년 9월 8일 잠실야구장 LG 선발투수 리즈가 삼성의 1번 타자 배영섭의 머리를 맞혔다. 그날 당번이었던 김연호 연세다움병원 견주관절파트과장은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쩌렁하게 울려 가슴이 철렁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곧장 필드로 뛰어나가 배영섭 선수의 목을 고정한 뒤 응급차에 태워 보냈다.
오 교수가 필드 지원을 나간 지도 어느덧 4년째지만 구단이 필드닥터에게 제공하는 건 구내식당 식권과 주차권 정도다. “사실 부담이죠. 트레이너 코치님들은 오후 5시부터 와서 경기 전에 같이 상의도 하길 원하지만 저희도 병원 진료를 봐야 하잖아요. 저야 대학에 있지만 월급쟁이 의사들은 병원 눈치를 안 볼 수 없죠.”
수석 팀 닥터와 5, 6명의 필드닥터가 한 팀을 이루는 메이저리그에서는 필드닥터도 억대 연봉자다. 반면 국내에서는 현재 5개 구단이 명목상 ‘필드닥터’를 두고 있지만 응급차를 보내는 병원의 당직의사가 나오는 실정이다. 이마저도 없는 구단은 응급구조사(40%)나 간호사(90%)가 경기장을 지킨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경기 시작 때 의사나 응급구조사의 대기를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프로축구의 경우 2011년 신영록 선수가 쓰러진 이후 규정을 강화해 모든 경기에 의사, 응급구조사(1급), 간호사가 대기해야 한다. 물론 이들은 모두 보수를 받는다.
오 교수가 KBO 산하 의료분과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유다. “메이저리그는 의료분과가 있어 부상 이후뿐 아니라 필드에서부터 체계적으로 선수를 관리해요. 다치면 의사에게 보내는 사후 조치만큼이나 필드에서부터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