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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민병선]교수님, 책 좀 쓰시죠

입력 | 2015-12-28 03:00:00


민병선 문화부 차장

“현자들이 보통 사람에게 보통 사람의 언어 대신에 자신들의 언어로 말한다면, 보통 사람들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최근 사회학자 정수복 씨가 쓴 신간 ‘응답하는 사회학’에서 인용한 말이다. 그가 책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사회학이 대학 강단에만 갇혀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사회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사회학과 교수들이 연구실적에만 매달려 현실과 동떨어진 연구만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사회의 물음에 응답하는 사회학이 필요하다는 뜻을 담았다.

정 씨는 책에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모범 사례도 소개한다. 사회학의 개념들로 사회 현상을 재밌게 풀어낸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의 ‘세상물정의 사회학’, 자전적 소설 형식으로 한국의 역사를 정리한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의 ‘침묵으로 지은 집’이 그렇다.

최근 동아일보가 선정한 ‘올해의 책’ 10권에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물리학)의 ‘세상물정의 물리학’이 선정됐다. 이 책은 다양한 통계자료를 통해 사회 현상의 본질을 분석한다. 프로야구 팀 간의 이동거리, 국내 성(姓)씨의 분포, 고속도로 정체의 이유 같은 흥미로운 소재가 눈길을 끈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의 이면이 보인다. 위와 같은 모범 사례들이 있지만, 우리나라 교수들은 대개 교양서 쓰기를 꺼린다. 큰 이유 중 하나는 연구 실적에 별로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학교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개 해외 유수의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이나 사회과학논문인용색인(SSCI)급 학술지에 논문이 실려야 실적 평가에서 높은 배점을 받는다. 반면 교양서나 번역서를 출간한 경우 점수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외국에서는 교수들의 교양서 출간이 활발하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델, ‘총, 균, 쇠’의 재러드 다이아몬드, ‘종말’ 시리즈의 제러미 리프킨,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 등 유명 교양서의 저자 중에는 교수가 많다. 최고의 지성이라는 교수들이 교양서 쓰기를 꺼리는 가운데 국내 출판계에는 유력 저자가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다. 이러다 보니 양서도 부족하다. 출판팀장으로서 기자에게 오는 책들을 검토하다 보면 소개할 만한 양서는 대부분 외국 서적이다. 교수들이 자신들의 전문지식을 사람들을 위해 쉽게 풀어낸다면 양서가 보다 많이 나올 것이다.

‘하버드 학생들은 더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의 저자인 전 뉴스위크 편집장 파리드 자카리아 씨는 책 제목과는 달리 기술 대혁명이 일어나는 현대에는 인문학 같은 교양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전문화에 매몰되면 세상을 보지 못하며, 좋은 교양서가 많을수록 그 사회가 발전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대학교수 179명이 이른바 ‘표지갈이’를 하거나 이를 눈감아 줬다는 이유로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표지갈이란 전공서적 표지에 적힌 저자명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꿔 새 것처럼 출간하는 행위를 말한다. 연구 실적을 올리기 위한 것이다. 대학들이 전공서적뿐만 아니라 사회에 공헌하는 측면에서 교양서 출간에도 후한 연구실적 점수를 줘야 할 때다.

민병선 문화부 차장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