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內 일제징용 참상 첫 확인… 한일은 28일 ‘위안부 담판’ 미쓰이-미쓰비시 비롯 日주요기업, 탄광-군부대 등 8329곳에 동원 확인된 피해자 4780명-사망 301명
日 강제동원 흔적 아직 생생 일제강점기 텅스텐 등을 채취하던 부산 기장군 일광면 ‘닛코(日光)광산’ 현장. 당시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된 광부가 살던 숙소, 사무소 등이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 제공
열악한 노동조건 탓에 ‘지옥 탄광’이란 악명이 붙은 아소(麻生)광업 소속 탄광은 한반도에 26개가 있었다. 경북 고령 출신의 16세 이모 군은 1944년 함경북도 경원군 소재 탄광으로 강제동원됐다가 이듬해 사고로 사망했다. 남제주군(현 서귀포시) 출신의 김모 씨도 경원군 탄광에 동원된 지 1개월 만에 사고로 숨졌다. 조선총독부가 강제동원령을 내린 1938년 이후 광복 때까지 이곳에서 죽은 것으로 확인된 사람은 18명. 이는 일본 지역의 아소광업 소속 탄광 사망자 21명에 맞먹는 수준이었다. ‘지옥 탄광’은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의 증조부가 운영했다.
당시 일본은 국민징용령이나 노무조정령 등 강제동원 관련 법령을 통해 15세 이하는 징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었다. 또 1932년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노역 금지 협정에 가입한 상태였다. 따라서 일본 내에서는 15세 이하 소년의 징용이 불가능했지만 한반도에서 조선총독부는 미성년 노동 및 강제노동 금지 규정을 적용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경남 거제시 지심도에 조성한 탄약고 입구. 현재 역사문화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가운데에는 미쓰이(三井), 미쓰비시, 스미토모(住友) 등 현재 일본 주요 대기업의 계열사들, 그리고 현 신일철주금의 모태가 된 니혼(日本)제철, 닛테쓰(日鐵)광업, 아소 부총리 집안인 아소광업이 출자한 조선유연탄 등도 포함돼 있다. 청진제철소 등 3개 작업장을 직접 운영한 신일철주금은 당시 총 52개의 작업장을 갖고 있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한반도 내 신일철주금 계열 소속 작업장 사망자는 모두 19명이다. 이 회사는 일본 정부가 직접 감독권과 인사권 등을 갖고 있었다.
이들 기업은 한반도 내에서 총 8329개의 강제동원 현장을 운영했고, 이들에 의한 강제징용 피해자는 확인된 사람만 4780명, 사망자는 301명으로 조사됐다. 한반도 내 전체 강제징용 피해자는 650만 명으로 추산된다.
정혜경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 조사1과장은 “이번 조사는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서 벌어진 강제동원의 실상과 해당 기업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집대성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위원회가 확인한 한반도 강제동원 현장 현황은 국내외에서 유일하게 공신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최초의 자료이다. 지금까지는 일본에 끌려갔거나 전쟁 등에 동원돼 만주, 사할린 등에서 강제노역을 한 경우에 대한 조사만 부분적으로 이뤄졌었다. 지금까지는 정부 차원의 공식 자료가 없어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피해를 증명할 방법이 막연했고, 실제로 일본 전범기업들은 일제강점기 한반도 내 강제징용에 대한 법적 책임을 거의 지지 않았다.
그러나 위원회의 조사는 앞으로 피해자 유족 등이 일본 정부나 기업 등을 상대로 한 진상 규명, 나아가 소송 등 법적 책임을 물을 때 주요 증거자료가 될 것으로 보여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한 피해자 유족들의 소송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배석준 기자 eul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