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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무기수입 세계1위 한국, 미국의 ‘호갱’ 면할 수 없나

입력 | 2015-12-29 00:00:00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78억 달러(약 9조1299억 원) 규모의 무기를 도입했다. 이 중 90%인 약 70억 달러(약 8조1935억 원)가 미제였다. 작년에 미국과 차세대 전투기인 F-35 40대와 고고도 무인항공정찰기인 글로벌호크 4대 등의 도입 계약을 체결하면서 무기 수입 1위국이 됐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올해 3월 발표한 2014년 국제 무기거래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10∼2014년 세계 9위의 무기 수입국이었다. 수입 무기는 미국산이 89%로 압도적이고 독일산(5%)과 스웨덴산(2%)이 뒤를 이었다.

한국이 미국 무기와 군사장비 도입에 혈세를 쏟아붓는 것은 한미연합 방어체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미국과 동맹인 유럽 국가들은 유럽산 무기를 미국산과 함께 운용해 대미 의존도가 한국처럼 높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미국 무기 구매의 큰손이면서도 정작 자주국방에 필요한 기술은 제대로 이전받지 못하는 ‘호갱’ 신세라는 점이다. 한국형전투기(KFX) 개발을 위해 필요한 핵심 기술 4건의 이전을 미국이 거부하고 다른 21개 기술에 대해서도 ‘큰 틀에서’만 이전 동의를 한 것이 단적인 예다.

세계 무기시장은 지난해 718억 달러로 전년보다 2.7% 늘었지만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이 때문에 무기 수출국들은 수입국에 금융과 기술 지원을 하는 등 판로 확대에 부심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은 미국 무기수출액(362억 달러)의 약 19%를 차지하는 주요 고객으로서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전략무기 도입을 미국이 승인해야 가능한 상황에선 굳이 기술 이전까지 해주며 세일즈 할 리가 없을 것이다. 미국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독과점 체제의 한계다. 올해 7월 1조4881억 원이 투입되는 공중급유기 도입사업 기종으로 미국 보잉의 KC-46A 대신 유럽 에어버스의 A330 MRTT를 선정한 것같이 무기 도입 다변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호주의 잠수함 사업에서 독일 프랑스 일본이 치열한 수주전을 벌여 호주가 최소 50억 호주달러(약 4조2600억 원)를 절감할 수 있게 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건이 안 좋아도 값비싼 미국 무기를 군말 없이 도입해야 하는 것은 비정상이다. 미국에 대해 할 말은 하고, 협상을 통해 실리를 챙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무기 도입을 둘러싼 방산비리를 척결하고 방위사업청의 협상 역량을 높이는 쇄신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