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국내 현장 가보니]

배석준·사회부
신 할머니뿐만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말 일본은 침략전쟁 수행을 위해 650만 명이 넘는 조선인을 공장, 탄광 등에 강제 동원했다. 일본이 가입한 국제조약은 물론이고 총독부의 자체 규정까지 무시하며 13세 어린이까지 끌고 갔다. 위험한 작업장에서, 감옥 같은 수용소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허울뿐인 임금은 얼마인지조차 모르는 채 강제 저축돼 결국 받지도 못했다.
전후 유대인 및 점령지 주민을 강제 동원했던 독일 전범기업 총수들은 재판에서 반(反)인도범죄로 재산몰수형 등 중형이 선고됐지만 일본 전범기업은 처벌을 피해 갔다. 한국의 동원 피해자들은 얼마 전까지 자신들의 임금 기록이 담긴 ‘노무자 공탁금 문서’조차 입수하지 못했다.
지원위가 활동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난 2010년 4월에서야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일본 기업명과 노동자 이름 등 총 17만5000건의 내용이 담긴 노무자 공탁금 문서 복사본을 넘겨받을 수 있었다. 지원위는 지금까지 총 180여만 건의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를 작성했고 이를 데이터베이스(DB)화했다. 검증을 거쳐 지원위가 인정한 피해자 명부는 74종, 58만5937건에 이른다. 지원위는 일본 전범기업 103곳과 이들이 운영했던 한반도 내 총 8329개의 강제동원 현장을 확인했다.
하지만 지원위의 이런 노력은 여기서 멈춰야 할지 모른다. 올해 말로 활동이 끝나기 때문이다. ‘지원위 활동기간 연장 및 상설화’를 담은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상임위 법안심사 소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하면서 올해로 문을 닫아야 한다.
지원위가 해야 할 일은 산적해 있다. 소장 자료 34만 건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 정부 소장 우편저금명부, 예탁금 자료, 시베리아 포로 사망자 명부, 사할린 소재 한인 기록물 등은 아직도 확보조차 못한 상태다.
국내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단체뿐 아니라 일본 시민사회단체조차 지원위의 존속을 요구하고 있다. 회의 한 번 제대로 열지 않고 예산만 축내는 ‘유령 위원회’가 부지기수인데 지원위는 이대로 해체돼야 하는 걸까.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의 눈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