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코트선 승부사, 밖에선 멋쟁이 소녀

입력 | 2015-12-29 03:00:00

KEB하나은행 골밑 지키는 첼시 리




첼시 리가 23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KEB하나은행 농구단 연습체육관에서 훈련을 마친 뒤 카메라 앞에 섰다. 리는 “매니큐어가 다 벗겨졌다. 꼭 포토샵을 해달라”며 수줍게 웃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오빠는 늘 동네 공원에서 농구를 했다.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던 나를 귀찮아했던 오빠지만 내가 농구를 할 때만큼은 별말 없이 끼워줬다.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오빠 친구들 틈에서 농구를 하다 보니 넘어져도 불평 없이 곧바로 일어나곤 했다.”

KEB하나은행의 골밑을 든든하게 지키는 첼시 리(26)의 얘기다. 박종천 감독은 리를 보고 ‘센터치고는 BQ(농구 아이큐)가 좋다’고 했다. “뭐가 되고 뭐가 안 되는지 게임을 읽을 줄 알아요.” ‘눈칫밥’ 먹어가며 배운 농구가 지금의 리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리는 현재 리바운드 단독 1위(183개)다. 2위인 삼성생명의 스톡스와는 19개 차다.

리는 “당연히 선수로서의 경쟁심이 강하다. 한 대 맞으면 한 대 꼭 되갚아줘야 하는 성격이다. 골밑에서 밀리면 당연히 화가 난다”고 했다. “코트 밖에서는 그냥 소녀다. 보통 여자들처럼 머리도 하고 예쁜 옷도 입고 화장도 공들여 한다.”

리는 경기에 나설 때마다 다른 색으로 손톱을 칠한다. “경기 때마다 색을 바꾸다 보니 미국에서 들고 온 매니큐어가 다 떨어져 간다”는 리에게 한국에서 사면 되지 않느냐고 물으니 “너무 비싸다”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스스로 ‘짠순이’라는 리는 “미국에선 1달러면 살 수 있는데 여기서는 5달러(약 6000원)더라. 조금만 참았다가 미국에서 왕창 살 것”이라고 했다. 리는 휴일이면 서울 명동에 나가 스트레스를 푼다. “너무 비싸 대부분 ‘아이쇼핑’으로 그치지만 SPA(제조유통일괄형) 브랜드에서는 옷도 꽤 산다. H&M이나 자라 매장을 즐겨 찾는다.”

박 감독은 리에게 ‘더 빨리 뛰어 골밑을 지배하라’는 주문과 함께 다이어트를 요구했다. 몸이 무거워지면 무릎을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리(186cm, 100kg)는 강도 높은 웨이트트레이닝과 식단 조절로 체중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 치킨은 못 끊었다. 치킨 얘기가 나오자 리는 “허니소스 양념치킨을 가장 좋아한다. 무릎 통증이 살 때문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며 소심한 반론을 펴기도 했다. 리는 치킨 말고도 닭강정, 양념돼지갈비 등 미국에서 맛보지 못했던 ‘양념’의 세계에 푹 빠져 있다.

리는 사실 KEB하나은행이 아닌 KB스타즈로부터 먼저 영입 제안을 받았다. “우승 경험도 있고 플레이오프에도 많이 진출한 강팀이라고 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최종 행선지는 플레이오프 진출이 ‘전무’한 하위팀 KEB하나은행이었다. “물론 모든 선수가 우승할 수 있는 팀에서 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약한 팀에서 뛰는 건 역사를 새로 쓸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리 역시 시즌 전 목표를 2위와 3위가 맞붙는 플레이오프 진출이라고 밝혔다. 현재 KEB하나은행은 공동 3위를 달리고 있다. 목표에 얼마나 근접했느냐고 묻자 리는 한참 멀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상대가 늘 새로운 전략을 들고나온다. 견제도 심해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더 힘들어진다. 매 경기 집중하는 수밖엔 방법이 없다.”

한편 KB스타즈는 28일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2015∼2016 KDB 여자프로농구 KEB하나은행과의 경기에서 75-60으로 승리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