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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선수도 빠져든 불법 스포츠도박, 합법적 ‘토토’ 키워 끊어내야

입력 | 2015-12-29 15:27:00


프로농구 SK 김선형(27)은 2011년 프로 데뷔 후 탁월한 개인기와 스피드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지난해 아시아경기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며 병역 혜택까지 받았다. 김선형의 시대가 열리는 듯 했지만 모든 게 깨졌다. 대학 시절 불법 스포츠 도박에 손을 댄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은 끝에 한국농구연맹(KBL)으로부터 제재금, 사회봉사. 2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김선형은 “부모님, 가족, 팬들에게 큰 상처를 드렸다.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거 아니냐”며 참회했다. 김선형과 함께 오세근, 장재석 등 기대주들도 같은 혐의로 한동안 코트를 떠나야 했다. 꿈과 희망을 주던 별들의 이미지는 언젠가 되찾을 수 있겠지만 큰 실망을 안겼다는 꼬리표만큼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2015년에도 한국 스포츠는 불법 스포츠 도박으로 휘청거렸다. 현재 국내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의 규모는 조사 단체에 따라 17조 원에서 31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국내 유일의 합법 사업자인 체육진흥투표권 스포츠토토의 지난해 발매 액인 3조 7000억여 원의 수배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액수라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스포츠토토는 국내 프로스포츠의 발전과 그 속도를 함께 내며 판매액 역시 증가를 거듭했다. 이러한 성장세는 국민체육진흥공단과 수탁사업자인 케이토토, 체육계와 학계가 모두 힘을 합쳐 이뤄낸 결과로 여겨진다. 스포츠토토 판매 수익을 통해 조성된 국민체육진흥기금은 한국 체육 발전에 요긴하게 쓰였다. 장 요르겐센 세계복권협회(WLA) 사무총장은 “한국의 스포츠토토는 사회공익기금 조성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WLA 건전성 평가에서 높은 단계를 인증 받았다”고 극찬했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축구, 농구, 배구 등에서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불법 스포츠 도박, 승부 조작 사건 등으로 빛이 바랬다.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는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되기 때문에 단속하더라도 몸통을 찾기는 쉽지 않다. 불법 스포츠 도박은 다양한 종류의 게임과 높은 환급률에 참여 금액의 제한이 없어 사행성과 중독성이 강하고 심각한 폐해를 일으킬 수 있다.

반면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 있는 스포츠토토는 국민체육진흥기금과 문화체육사업, 지방자치단체 체육시설 보수 등을 목적으로 도입됐기 때문에 1인당 10만 원의 참여 제한 금액이 있다. 환급률 역시 50~60%로 제한돼 불법 스포츠 도박의 80~90%보다 낮다. 게다가 국무총리실 직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의 매출총량제한제도 때문에 스포츠토토는 한 해에 정해진 매출 밖에 올릴 수 없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시스템은 건강한 판매 구조를 통해 더욱 많은 체육진흥기금을 조성해 그 혜택이 사회 전반에 폭넓게 퍼질 수 있도록 선순환을 막는 구조다”며 “스포츠토토는 상대적으로 현저히 낮은 경쟁력 때문에 불법 스포츠도박 시장으로의 이탈을 팔짱만 끼고 지켜봐야 할 형편이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스포츠토토는 사감위의 매출총량을 맞추기 위해 연말에는 일시 발매를 중단하는 경우도 있다. 합법적인 스포츠토토 이용자들이 불법 스포츠 도박으로 이탈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이유다.

불법 스포츠 도박 근절책으로는 우선 강력한 법적 대응과 건강한 시민 의식의 선행 등이 요구되고 있다. 아울러 합법적인 스포츠토토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요르겐센 WLA 사무총장은 “한국 스포츠 베팅은 강력한 법적 규제로 자율적인 사업 운영이 어렵다”며 “불법 사업자들이 오히려 유리해 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이원희 소장도 “불법시장을 줄이는 방법은 합법 시장을 넓혀주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제안했다. 유럽과 아시아의 스포츠 베팅 선진국들은 규제를 과감히 풀면서 스포츠 도박의 양성화와 건전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고객에게 돌아가는 환급률을 높이고, 한 경기 베팅, 실시간 베팅 등 상품의 다양화도 도입이 시급해 보인다. WLA에 따르면 유럽의 국가 복권 사업자와 합법 사업자의 환급률은 91%에 이른다. 한 스포츠산업 전공 교수는 “합법적인 스포츠토토 사업의 육성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비롯한 주요 국제 대회의 재원 마련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