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협상 타결 이후]
《 한일 외교장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타결을 두고 하루가 지난 29일에도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일본이 한일 장관의 합의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해 언론에 마구 흘리자 이를 두고 “우리 정부가 일본 요구를 다 들어준 것이냐, 뭐냐”는 지적도 쏟아지고 있다. 》
■ “소녀상, 조치 취할 쪽이 발표한 것”
① 왜 한국이 소녀상 언급?
정부는 외교장관 회담 전날만 해도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외교장관 회담에서 다뤄지더라도 기자회견에서는 빠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28일 공동기자회견에서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를 관련 단체와 협의하겠다고 말하자 논란이 일었다. 윤 장관의 입에서 소녀상 발언이 나오자 ‘일본의 손을 들어준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준 것. 회담 직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이 자국 언론에 “소녀상이 이전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하자 의혹이 더 짙어졌다. 전국 27곳과 미국, 캐나다 등에 있는 위안부 기림비와 소녀상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추가 건립 운동은 중단해야 하는 것인지 혼란도 야기했다.
외교 당국자는 이에 대해 “한일 양국이 취할 조치를 각자 발표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한국 장관이 발표한 것이다. 일본 외상이 언급했으면 더 큰 문제로 비쳤을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이 당국자는 “소녀상이라는 대상이 물리적으로 한국 땅에 있기 때문에 한국 장관이 말했지만 철거를 약속한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고위 당국자는 “소녀상은 일본이 줄곧 문제를 제기해 온 사안이어서 이 요소를 빼고는 협상이 중단되고 말았을 것”이라며 “교섭을 진행하기 위해 한국이 언급은 했지만 일본에 양보한 건 없다”고 했다. 관련 단체와 협의도 곧바로 시작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일본이 약속한 조치가 이행되는 것을 먼저 확인한 뒤 점진적으로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이 당국자는 말했다.
■ “불가역적 해결 표현, 한국이 제안”
“日 말바꾸기-망언 말라는 요구”… 실제론 한국의 자충수 지적도
한일은 일본이 피해자 치유조치(재단 출연 10억 엔 등)를 성실히 이행한다는 전제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된다고 확인했다.
불가역적(irreversible)이라는 낯선 단어를 한일 가운데 누가 고집했는지는 증언이 엇갈린다. 이 단어는 북한을 상대로 한 핵협상에나 쓰일 만큼 외교적으로 생소해 누가 넣자고 했느냐에 따라 합의의 성격이 완연히 달라진다. 정부 당국자는 “일본이 자꾸 말을 뒤집고 무라야마, 고노 담화의 책임 인정을 부정해왔기 때문에 말 바꾸기와 망언을 하지 말라는 요구가 그 단어에 담겨 있다”고 말해 한국의 의도라고 말했다. 아사히신문도 “한국의 (불가역적) 제안에 일본 외무성이 놀랐다”며 “한일 모두 진의를 의심케 하거나 여론에 밀려 약속을 팽개쳐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불가역적인 해결’은 한일을 각각 속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최종적·불가역적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협상을 깨고 귀국하라’고 지시했다는 일본 보도도 나왔다. 정부는 이 보도를 “일본 국내용 언론 플레이”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일본이 위안부 문제 해결과 관련해 ‘한국이 골대를 옮긴다(말을 바꾼다)’는 식의 홍보를 해왔기 때문에 ‘뒤집지 못한다’는 의미로 한국이 이 단어의 사용을 강조했다면 오히려 효과는 마이너스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③ 기시다의 ‘대독’ 문제없나
“총리 이름 밝혀 국제법상 효력… 아베가 직접 말할 기회 있을 것”
이날 회견에서 ‘일본 정부 책임’ ‘사죄와 반성 표명’은 아베 총리가 아닌 기시다 후미오 외상이 대신 읽었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아베 총리는 끝까지 ‘사죄’ ‘책임’이라는 단어를 본인의 입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총리의 이름을 외상이 밝힌 만큼 국제법상 총리가 직접 말한 것과 같은 효력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 당사자는 법적인 효력을 따지기보다 아베 총리 본인의 육성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길 원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29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로 찾아온 임성남 외교부 1차관에게 “아베가 공식적으로 사죄를 하고 법적인 배상을 해야 한다. 지금 해결이 다 됐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임 차관은 “(아베 총리) 본인이 직접 할 겁니다. 기시다 외상이 일본을 대표해 아베 총리의 말을 전한 거고, 어느 시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직접 밝힐)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라고 말했다.
조숭호 shcho@donga.com·장택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