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字句 수정’ 본연의 기능 무시… 여야 지도부 대리전 기구로 전락
상임위 조율 끝난 343건도 발목, 30일 법사위 재개… 졸속심사 불가피
‘1280건.’
29일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쌓여 있는 법안 건수다.
12월 임시국회는 내년 1월 8일 막을 내린다. 19대 국회가 입법 활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이 사실상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각종 민생법안들을 붙잡고 있는 법사위는 의사일정 협의를 놓고 막판 진통을 거듭했다.
법사위 통과를 기다리는 법안들 중 이렇게 소관 상임위에서 이견 조율을 마치고도 정쟁에 막혀 처리되지 못한 법안이 343건에 이른다.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법’은 아직 법사위에 상정도 되지 못했다. 화재나 메르스 등 재해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을 지원하고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일 경우 고용보험료를 지원하는 방안이 막혀버린 것이다. 초고층빌딩에 대한 재난·테러 관리를 총괄하는 관리자에게 교육을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등 안전기준을 강화하는 법안도 마찬가지다. 6·25전쟁에 참전한 소년·소녀 병사에게 위로금을 주는 법안도 국방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재정 문제가 뒤늦게 불거져 다시 법사위에서 멈춰 선 상태다.
937건에 이르는 법사위의 고유 법안 중에도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법안이 많다. 2008년 만취 상태에서 어린이를 성폭행한 조두순이 감형을 받는 등 음주 감경으로 사회적 공분이 들끓자 술이나 마약에 취한 채 저지른 범죄라도 감형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쏟아졌다. 하지만 현재 법안1소위에는 이런 내용의 법안 9개가 논의도 되지 못한 채 수년째 서류만 쌓여 있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후 정부가 발의한 ‘다중인명피해범죄의 경합범 가중에 관한 특례법안’도 마찬가지다. 대형 인명사고를 일으킨 범죄자를 강력히 처벌한다는 내용의 이 법안은 박근혜 대통령까지 약속한 것이지만 여전히 표류 중이다. 대통령이 사면권을 남용하지 못하게 하는 사면법 개정안도 여야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지난해 4월 이후 논의가 멈췄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