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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새긴 4번타자 “보고 있나, 메이저리그”

입력 | 2015-12-30 03:00:00

프리미어12 우승으로 되돌아본 ‘대한민국 상징’ 계보




올해도 야구는 국민들을 웃게 했다. 야구대표팀은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에서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비웃듯 정상에 올랐다. 대표팀 선수 모두가 영웅이었지만 ‘대한민국 4번 타자’의 계보를 이어받은 이대호(33·소프트뱅크)는 그중에서도 특히 돋보였다. 미국과의 결승전에서 홈런포를 터뜨린 박병호(29·미네소타)도 차세대 대표팀 4번 타자로 손색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 일본 무대에 이어 프리미어12까지 평정한 대한민국 4번 타자들의 방망이가 이제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을 겨누고 있다.

박병호와 이대호는 이승엽(39·삼성)과 함께 대한민국 4번 타자답게 올 시즌에도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빛나는 기록들을 새겨놓았다. 박병호는 리그 최초로 2년 연속 50홈런을 넘겼다. 이승엽은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첫 400호 홈런 고지에 올라섰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에 올랐던 이대호는 일본에서 시즌 첫 30홈런(31개)을 넘기면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일본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수준 높은 기량에 성실함, 여기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4번 타자로서 무거운 소명 의식까지 갖춘 대한민국 4번 타자들을 보는 눈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지갑을 좀처럼 열지 않는다는 저예산 메이저리그 구단들까지 대한민국 4번 타자들을 잡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이승엽이 2002년과 2003년 2년 연속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초청 선수 자격으로 참가하며 문을 열었고, 후배들은 당당히 새로운 세상을 향해 도전장을 내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 4번 타자는 한류 상품으로 야구 본고장에 다가가고 있다.

여기에는 역대 대한민국 4번 타자들이 만들어 낸 드라마 같은 역사가 훌륭한 밑거름이 됐다. 1960, 70년대 대표팀 부동의 4번 타자였던 김응용 전 한화 감독과 중심타선을 이뤘던 박영길 전 삼성 감독은 “프리미어12 준결승에서 4번 타자 이대호가 극적인 결승타를 치는 장면을 보면서 과거 대표팀 4번 타자들이 만들어 낸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역시 4번 타자는 한국 야구의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고 감격스러워했다.

1970년대 후반 대표팀 4번을 맡았던 ‘어퍼 스윙’의 대명사 김봉연 극동대 교수는 “‘내가 대한민국 야구 수준의 척도인 4번 타자’라는 마음가짐으로 국제대회마다 역사를 써준 역대 4번 타자들에게 감사하고 대단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한일전은 4번 타자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명장면으로 수놓아졌다. 김 교수는 “일본이 한국 야구를 한참 아래로 보던 1977년 콜롬비아 초청야구대회 한일전에서 필사적으로 장외 홈런을 쳐 기세당당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노찬엽 LG 코치는 “시범 종목이던 1988년 서울 올림픽 준결승에서 4번 타자로 일본(1-3 패)을 만났는데 당시 투수가 노모 히데오(전 LA 다저스)였다. 난생처음 본 어마어마한 포크볼을 상대로 안타를 한 개 만들어 냈던 추억이 선하다”고 했다.

박영길 전 감독은 “강심장인 김응용 감독도 한일전만 되면 대기 타석에서 부들부들 떨고 긴장을 많이 했다. 일본 경기 전날에는 맥주를 마시고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했다”며 “그것을 극복하고 한일전의 주인공이 됐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이라고 전했다.

프리미어12가 한창 열리던 중 이대호는 대한민국 4번 타자에 대한 그 나름의 의미를 털어놨다. 이대호는 “대한민국 4번 타자는 나라를 대표해서 경기에 나가는 중요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경기에 들어가기 전부터 부담이 되고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지만 그것을 이겨내야 하는 게 임무”라고 말했다. 결국 운명처럼 다가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한민국 4번 타자는.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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