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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치기 욕했는데 돌아보니 나도 아차…”

입력 | 2015-12-31 03:00:00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2015년 총 250회 시리즈에 쏟아진 독자들의 공감-다짐…




올 한 해 동아일보는 1월 6일부터 12월 30일까지 총 250회에 걸쳐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캠페인을 펼쳤다. 배려, 약속, 정직, 안전, 문화예절, 절전, 국격, 허례허식, 직장에티켓, 공공에티켓 등 월별로 주제를 나눠 독자와 함께 고민할 과제를 제시했다.

250회 중 가장 눈길을 끈 기사는 무엇이었을까. 또 독자들이 다가오는 2016년에 이루고자 하는,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뀌는’ 결심은 무엇일까. 공식 e메일(change2015@donga.com) 등을 통해 보내온 독자들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 “‘남 얘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네요”


‘영화관 스마트폰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편이 가장 생각난다는 최정원 씨(29·여)는 “남이 스마트폰 쓸 때 눈살을 찌푸렸지만 나 역시 급한 마음에 열어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흡연실 옆에 두고 왜 밖에서 피우세요?” 같은 흡연 관련 편이 기억에 남는다는 김영현 씨(29)는 “흡연자로서 그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는지 많이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공공에티켓을 잘 지키자는 내용의 기사가 많다 보니, 독자들이 몇몇 소수의 잘못을 비판하는 데 그칠 것 같았지만 반대였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이백 씨(28·여)는 “거리에 나뒹구는 일회용 컵 편을 읽었는데, 나도 가끔씩 음료수가 남은 상태에서 버렸던 기억이 나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음료수가 담긴 채로 쓰레기통에 버릴 경우 쓰레기통 안이 액체로 오염될 수도 있고, 치우는 사람도 치울 때 어렵다. 한 번 더 남을 생각하고 배려했다면, 남은 음료수를 화장실에 처리한 뒤 버렸을 것이다. 고의는 없었지만, 작은 행동 변화로 여러 명이 웃을 수 있지 않았을까.

기사를 읽고 후련하고 통쾌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아르바이트로 카페에서 일한다는 강석진 씨(29)는 “‘무례한 갑질 고객 내보내겠습니다’라는 기사를 읽은 후 무리한 요구에도 머리를 숙여야 하는 직원들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준 것 같아서 속이 시원했다”고 말했다.

평소 못마땅했던 ‘꼴불견’ 행동과 관련된 기사를 보고는 단순히 비판하기보다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의 어려움을 생각하게 됐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영서 씨(27·여)는 ‘다중시설 자녀 동반 땐 에티켓을’ 편을 예로 들며 “식당에서 소란을 피우는 아이를 방치하면 안 되지만 요즘 카페에는 쓰레기통에 기저귀도 못 버리도록 제약이 많아지는 추세여서 부모들도 애를 먹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캠페인을 통해 우리의 사회문화 자체를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장지용 씨(26)는 “‘부장님 휴가 먼저 가세요’ 편에서 지적한 것처럼 휴가문화가 바뀌어야 하고, 직장 내 차별문제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훈 씨(49)는 “공연 관람 문화가 성숙해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공연 중간 중간에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경우가 있다”며 “휴대전화를 꺼야 한다는 걸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는 걸 실천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 “2016년 나의 ‘내바세바’ 목표는요…”

독자들의 2016년 목표는 거창하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고, 남을 배려하고, 공중예절을 지키는 소박한 것들이었다. 주부 안연순 씨(57·여)는 “차가 많이 안 다니는 도로에서 종종 무단횡단을 했는데 새해에는 꼭 교통규칙을 지킬 계획”이라며 “아이들이 내 행동을 보고 배울 수 있는 만큼 이 결심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박정민 씨(55·여)는 “술 없는 1년을 보내자는 의미에서 1월은 금주하는 ‘드라이 재뉴어리’란 말이 흥미로웠다”며 “주변에 널리 알리고 우리 가족도 실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환경보호와 절전을 목표로 삼은 독자도 있었다. 강수윤 씨(37·여)는 “커피를 자주 먹는 20, 30대 여성이라면 휴대용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종이컵 사용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종이컵 대신 개인 텀블러를 쓰는 경우, 스타벅스 등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는 300원씩 할인 혜택을 주고 있다. 김영옥 씨(53·여)는 “겨울철에 일명 뽁뽁이를 창문에 잘 붙이고 내복을 입으면 난방비도 줄이고 에너지 소비량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장년층일수록 허례허식을 없애자는 내용에 공감이 많았다. 이순단 씨(58·여)는 “‘1000만 원짜리 돌잔치 아이는 행복할까?’ 편을 읽고 자녀 결혼은 소박하게 준비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타인을 배려하겠다는 ‘내바세바’를 목표로 세운 경우도 많았다. 박상혁 씨(28)는 “식당과 카페에서 주문할 때 상대방에게 정중히 부탁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인 만큼 갑을관계처럼 행동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인사의 힘’을 인상 깊게 읽었다는 고 이성락 씨(67)는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 먼저 인사하면 기분이 참 좋은데 내년부터는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인사하려 한다”고 결심을 밝혔다.

‘내바세바’ 시리즈가 독자들의 공감과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동안 성장과 성적 중심주의에 빠져 있던 이 사회에 사람들이 공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예절과 예의가 실종돼 버린 탓이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는 “공동체 의식이 약해지고 개인주의의 의미를 오해하면서 그동안 한국사회 내 갈등이 극단적이고 더 깊어졌다”고 분석했다. 정군기 홍익대 교양외국어학부 교수는 “현재 한국사회는 유교의 강점이던 상부상조와 배려·예의·염치를 잃고, 6·25전쟁을 지나면서 서구의 합리적 공동의식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혼란 상태”라고 정의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두레를 통해 서로 도울 일이 있으면 돕기도 했다. 정 교수는 “먹고살기 급했던 만큼 ‘우리’는 없어지고 ‘나’ ‘내 식구’ 정도만 소중히 여기다 보니 타인을 위하는 배려가 싹트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사람이 먼저 시작하는 걸 기다리기보다 나부터 하나씩 실천해보면 어떨까. 표혜령 화장실문화시민연대 대표는 “우리는 늘 ‘바쁘다’는 걸 핑계로 내세웠지만 2016년에는 스스로의 빗장을 열고 각자 한발씩 앞으로 나서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