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 논설위원
‘베테랑’ 등 시대를 말하다
우리 영화가 답답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부채질하는 방식으로 대박을 기록했다면 외화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이야기로 인기몰이를 했다. ‘어벤저스’ 등 일부 통쾌한 액션물을 빼면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긍정 에너지로 충만한 ‘인사이드 아웃’ ‘마션’ ‘인턴’이 외화 흥행 순위 5위, 6위, 8위로 각기 이름을 올렸다. 건강한 삶엔 기쁨과 슬픔의 균형이 필요함을 일깨운 ‘인사이드 아웃’, 화성에 홀로 남은 사람의 생존기 ‘마션’, 70대 인턴과 젊은 여성 최고경영자의 연대를 다룬 ‘인턴’의 돌풍은 의미심장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의 배출구만이 아니란 것을 보여 주었다. 역경 앞에 굴하지 않는 도전정신, 세대를 초월한 교감에 그만큼 목말라 있다는 증표다.
어떤 사회든 빛과 어둠을 품고 있다. 국내에선 ‘금수저’가 주목받았다면 중국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자국을 표현하는 단어로 자조적 신조어 ‘니궈’(너희 나라)가 유행했다. ‘부익부 빈익빈’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불평등과 씨름하는 것은 부자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한국 영화가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관점을 과도하게 단순화하는 것은 걱정스럽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 세태 비판과 문제적 인간을 단죄하는 식으로 ‘동어반복’을 계속하면 지루해진 관객들은 금세 등 돌릴 것이다.
문제는 하나씩 풀어 가야
돌이켜보면 직배의 빗장이 풀렸을 때 나락으로 추락했던 경험이 한국 영화에 약이 됐다. 개방과 글로벌 경쟁의 엄중한 현실을 직시하고 적응했기에 체질 개선을 통해 할리우드에 뒤지지 않는 콘텐츠를 만들게 된 것이다. 세대와 계층 문제가 난마처럼 얽힌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 아닐까. 영화 ‘마션’의 주인공이 말했듯이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뭔가를 실행하든지” 선택의 기로에 우리도 서 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다음 문제를 해결하고, 또 그다음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렇게 계속 문제들을 풀다 보면 집으로 갈 수 있다.” 복잡한 문제가 단방에 해결될 리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씩 문제를 풀어 가는 것, 그 속에 길이 있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