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소감]
이수경 씨
당선 소식을 받기 한 시간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던 글입니다. 무언가 결심하는 중이었지요.
그 결심이란 단연, ‘좋은 소설’입니다. 작가로서는 그것이 전부겠지만 인간으로 느낄 유혹이나 근심이 왜 없을까요? 그러나 이 성취는 오직 ‘소설’로 이룬 것이므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소설을 쓰는 것뿐입니다. 운명이 조금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도 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묻고 있어요. ‘좋은 소설이 무엇일까.’
송기원 선생님, 겨우 한 발짝 걸었어요. 이순원 선생님, 제가 기쁨을 드렸을까요. 김종광 선생님, 마지막 두 달, 저의 힘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노트북에 글을 쓸 수 있게 해준 유 군, 신경질을 견뎌준 가족, 사랑하는 아이들 주연과 준식, 에콰도르에 있는 수진과 그의 가족, 엄마와 아버지, 거친 소설을 읽어주신 김갑수 작가, 고마운 장정희 소설가, 그리고 광장이나 고공에 계셨을 그 누군가가 저와 함께했습니다. 모두 감사해요.
△1966년 대구 출생 △강남대 영문과 중퇴
오정희 씨(왼쪽)와 성석제 씨.
‘술독’은 흔한 도시의 부랑자, 노숙자를 보여준다. 그늘 속 인간상에 대한 묘사와 의식 추적이 의미가 없다 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쉽다. ‘케이브 인’은 어느 식당의 일상적인 풍경을 연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속물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개성적 터치로 드러내는데 ‘노부’ 같은 어색한 호칭에서 작품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듯한 느낌을 주었다.
‘굿모닝’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입심이 대단하다. 문제가 된 것은 특정한 차의 브랜드가 정면에 등장하고 소설의 흐름도 거기에 기대고 있으며, 제목이 지향하는 상징성을 이야기가 획득하지 못한 것이다. ‘멘덴홀 빙하 숲의 부활’은 설인(雪人)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음에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개연성을 구축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작품 말미의 문장처럼 다 읽고도 뚜렷하게 ‘잡히는 건 없었다.’
당선작 ‘자연사박물관’은 여러모로 균형이 잘 잡힌 작품이다. 소시민의 일상과 노동 현장의 살풍경한 모습, 노조 결성에 따른 핍박과 절망감이 어울리기 힘든 제재임에도 불구하고 무리 없이 녹아들었다. 날것 그대로의 지독한 삶을 때로는 가벼운 욕설과 농담, 뭉클함으로 감싸 안으며 소설은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이런 걸음은 등단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당선자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보내며, 인연이 늦춰진 분들에게는 걸음을 멈추지 말기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