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소감]시조
정지윤 씨
오래전 나를 떠난 말들이 수많은 것을 스쳐 내게로 온다. 아픔은 늘 길들여지지 않은 채 달려온다. 슬픔을 잃는 것은 사랑을 잃는 것. 살아 있는 시를 쓰기 위해 모든 존재를 사랑하고 더 많이 아파해야 할 것이다.
두렵고도 가슴 벅찬 당선, 이제 시작이다. 잘 쓴 시보다는 울림이 있는 시, 세계에 대한 고민과 아픔이 녹아 있는 시를 쓰기 위해 치열하게 갈고닦으며 정진할 것이다. 나의 기준과 경계를 넘어야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늘 시가 오는 문을 열어 두고 기다릴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들, 문학의 길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모두 고맙습니다. 부족한 작품에 용기를 주신 동아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1964년 경기 용인 출생 △2015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이근배 씨(왼쪽)와 이우걸 씨.
[심사평]시조
‘울돌목에서’와 ‘하피첩을 읽다’는 역사적 소재를 시화한 작품으로 시대의식을 반추하고 촉구하는 면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지만 큰 울림과 개성이 부족해 보였다.
오늘의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다룬 ‘금빛 자오선’의 경우, 시조의 사명을 자각하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보지만 인식의 깊이나 시문장의 묘미를 얻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거미’와 ‘응웬씨의 저녁’은 노동자의 삶을 다룬 체험 위주의 작품들로 삶에 대한 섬세한 관찰에는 성공적이지만 이 시조를 쓴 시인들의 상상력의 깊이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우리 선자들은 ‘날, 세우다’를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 어렵지 않게 합의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삶의 현장을 노래하되, 고된 삶의 값싼 비애나 연민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는 그것을 견디고 극복하는 건강한 희망을 보여주었다.
‘눈초리를 자르고’, ‘시간을 자르’고 ‘아침을 자르’는 가위의 변용 이미지를 통해 자칫 상투적인 내용을 지루하게 끌고 가는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우리 시조의 지평을 확장시킬 미학적 도전 의식을 읽을 수 있었다. 건강한 삶의 자세, 날카로운 시선, 그만이 지닌 감수성과 시적 화법은 이 신인을 믿는 선자들의 희망의 근거다. 대성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