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논설위원
정치부 기자를 오래한 때문인지, 대선 때마다 많이 받은 질문이다. 새날은 밝았고, 4월 총선만 끝나면 관심사는 내년 대선으로 모아질 것이다.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는 솔직히 나도 정말 궁금하다. 그렇다고 ‘나도 궁금하다’고 대답할 수는 없기에 나름대로 답변을 정리해놓고 있다. “한국 대통령이 되려면 적어도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단 이 두 가지는 정치부 기자 경험을 통해 스스로 정리한 것이므로 주관적일 수도 있음을 미리 밝힌다.
자기희생의 스토리 있어야
둘째는 시대정신에 맞는 비전이다. 스토리가 인생의 전력(前歷)이라면, 비전은 대통령이 이끌어주기를 기대하는 한국사회의 방향이다. 김영삼 대통령에게는 오랜 군사독재를 끝내고 문민시대를 열어달라는 시대적 소명이,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수십 년 응어리져 더께 앉은 호남의 한을 풀어달라는 역사적 기대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는 정치권이란 ‘그들만의 리그’에서 독점하던 기득권을 깨고 시민권력의 시대가 열릴 것이란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참여정부 5년의 이념 과잉과 편 가르기, 포퓰리즘에 질린 국민은 실용(實用)을 기치로 세운 이명박 정권을 택했다. 하지만 지나친 실용은 종종 무원칙으로 이어졌고, 결국 국민은 ‘원칙이 바로 서는 사회’를 브랜드로 내세웠던 박근혜 대통령을 택했다.
자, 이제 첫째인 스토리를 현재 거론되는 대선 예비후보들에게 적용해보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모시고 한국 민주화에 기여한 자기희생의 스토리가 있다. 다만 리더가 아닌 참모 이미지가 강한 편이어서 파괴력은 크지 않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의 ‘동업자’였다는 것이 강점이자 한계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51.6%)과 호각의 득표율(48.0%)을 올린 점은 자산이다.
시대정신에 맞는 비전 보여야
안철수 의원은 안랩을 창업해 ‘컴퓨터 의사’로 변신한 뒤 청춘콘서트로 청년들의 마음에 다가갔다. 다만 중대한 순간에 회군해 ‘철수정치’ 이미지가 따라붙는 것이 부담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운동을 통해 서울시장에 재선까지 했으나 ‘해놓은 게 뭐 있느냐’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스토리가 가장 소구력 있는 사람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충북 음성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유엔 사무총장까지 올랐으니…. 하지만 이것이 과연 자기희생의 행로냐에 대해선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