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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의 법과 사람]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1호 상남자’?

입력 | 2016-01-02 03:00:00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집 부근 배봉산 정상은 인산인해(人山人海)였다. 새 해를 보려는 인파가 차고 넘쳤다. 작년엔 이 정도는 아니었다. 삶이 고단해서일까. 아니면 4월 총선 탓일까. 여기저기 예비후보들이 고개 숙이며 표를 구했다. 그러나 이들을 대하는 민심은 날씨처럼 싸늘했다.



丙申年, 하느님이 보우하사

  건너편, 용마산이 실루엣으로 검게 윤곽만 보였다. 짙은 구름이 껴 일출 시간이 지나도 해는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해가 떴다”고 외쳤다. 그래, 맞다. 몸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보자. 사람에 밀리고 치여, 눈을 비비며 따라온 아이들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돌아 내려가는 모퉁이에 잠시 섰다. 구름에 반쯤 가린 해가 어느덧 붉은 얼굴을 드러낸다.

누군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우렁차게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대목에서 마음 깊은 곳이 울컥했다. 보우(保佑), 돕고 보살펴 달라는 말이다. 해를 보며 소원을 빌었다. 가족의 건강부터 하나하나 짚어가다 마지막으로 이 나라에 ‘고약한 일’이 닥치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얼마 전,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은 “세계 경제가 크게 틀어지면서 우리나라가 ‘고약한 일’을 당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재수 없을까 봐 에둘러 표현했지만 ‘제2의 외환위기’ 같은 상황을 걱정한다는 뜻이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외화자금과장이었다. 1997년 1월 부임해 보고서를 보니 “게임이 끝나 있었다”고 회고했다. 윤증현 금융정책실장에게 “왜, 불렀습니까. 게임 끝났는데”라고 되물었다. 윤 실장은 “우짜겠노, 니가 해결해라”고 했다.

원화 평가절하밖에 답이 없었다. 환율이 1달러에 850원에서 860원만 돼도 난리칠 때였다. 김석동은 외환위기를 경고하는 내부보고를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그의 호루라기 소리는 잠든 김영삼 청와대를 깨우지 못했다. 그해 12월 25일, 대한민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내밀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 1호 상남자다.” 작년 한 송년모임에 참석한 ‘대통령의 사람’이 불쑥 한 말이다. 그도 상남자 축에 속한다. ‘남자 중의 남자’를 뜻하는 상남자도 큰 말인데 대한민국 최고의 상남자라니…. 그 역시 대통령의 강한 기에 눌린 게 틀림없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도 재임 중 ‘내각 내 유일한 남자(the only man in her cabinet)’라는 말을 듣긴 했다.

덩치가 크다고 싸움 잘하는 건 아니다. 빈틈을 노려 갑자기 급소를 찌르면 덩치도 무너진다. ‘1호 상남자’ 박 대통령은 싸움의 기술을 체득한 사람이다. 싸움의 상대를 잘 골라야 한다. 박 대통령이 혼신의 힘으로 싸워 막아야 할 적은 ‘제2의 환란(換亂)’을 부를지도 모를 저성장의 늪이다. 주눅 든 내각과 청와대 참모들로는 위기를 못 막는다.




시진핑-아베와 정면승부하라

싸움의 고수는 겨룰 상대가 한 번에 4명을 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대통령의 상대는 야당의 문재인이나 안철수, 여당의 김무성이나 유승민이 아니다. 3년 전 앞서거니 뒤서거니 권좌에 오른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협력하고 때로 경쟁하는 ‘맞짱’을 떠야 한다. ‘도전’을 3번 외친 아베의 신년사부터 정독해 보시라.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