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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오의 우리 신화이야기]신세계의 열망, 홍수

입력 | 2016-01-02 03:00:00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지는 신성한 나무. 고구려 장천1호분.

‘목도령’은 홍수 이후 인류의 재전(再傳)을 내용으로 한 홍수신화다. 옛날 어느 곳에 한 그루의 신령스러운 교목(喬木)이 있었다. 그 나무 그늘에는 천상의 선녀 한 사람이 항상 내려와 있었다. 그러다가 선녀는 목신(木神)의 정기에 감응해 아들(목도령)을 출산했다. 목도령이 예닐곱 살이 되었을 때였다. 선녀가 천상으로 돌아간 후 갑자기 큰 비가 연일 내려 이 세상은 점차 바다로 변해갔고, 신령스러운 교목도 마침내 쓰러져갔다. 교목은 아들에게 소리쳤다. “어서 내 등에 올라타거라.” 목도령은 아버지인 교목을 타고 정처 없이 물결을 따라 표류했다.

얼마를 갔을까. 어디선가 살려달라는 처량한 소리가 들려왔다. 개미들이 홍수에 떠내려가며 지르는 소리였다. 목도령은 아버지에게 구조 여부를 물었다. “구해주어라.” 목도령은 개미들이 교목에 올라타도록 도왔다. 또 얼마를 가노라니 역시 전과 같은 처량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한 무리의 모기들이었다. “살려주어라.” 교목은 이번에도 목도령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었다. 그런데 다시 처량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목도령과 동년배쯤 되어 보이는 소년의 목소리였다. 벌레들을 살려준 목도령이 사람을 구해주고자 했음은 물론이다. “그건 안 돼.” 아버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들의 요구를 단번에 거절했다. “사람 살려주시오!” 살려달라는 소년의 세 번째 소리가 들려왔을 때 목도령은 견딜 수가 없었다. 목도령은 아버지에게 애원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할 수 없다만 반드시 후회할 날이 있으리라.” 그렇게 마지못해 소년을 태운 교목은 마침내 어떤 조그마한 섬에 표착하게 되었는데, 그 섬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였다.

홍수로 인해 인류가 절멸한 세상. 섬에는 한 사람의 할머니와 두 소년, 동년배의 두 소녀(친딸, 하녀)만이 살게 되었다. 할머니는 이들이 성장하자 두 쌍의 부부를 만들어서 이 세상에 인류를 퍼뜨리고자 했다. 그러나 친딸을 어느 청년과 결혼시킬 것인지 정하기가 어려웠다. 두 청년이 하녀를 신부로 취하길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목도령이 없는 틈을 타 구조된 청년이 할머니에게 말했다. “목도령은 한 섬의 좁쌀을 모래사장에 흩어 놓더라도 모래 한 낱 섞지 않고 순식간에 도로 주울 수가 있습니다.” 할머니는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 재주를 목도령에게 청했다. 목도령은 생각해 보지도 못한 일이므로 당연히 거절했다. 할머니는 목도령이 자기를 멸시하는 걸로 생각하여 크게 화를 냈다. “만일 네가 재주를 보여주지 않으면 딸을 주지 않겠다!” 어쩌겠는가. 목도령은 한 섬의 좁쌀을 모래사장에 흩어 놓고서 그걸 들여다보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그때 개미들이 와서 목도령을 도와주어 임무 완성. 이제 목도령이 할머니의 친딸과 맺어질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러나 꼼수를 부린 청년이 이를 수용할 리 만무하였다. 할머니는 할 수 없이 두 처녀를 동서의 두 방에 넣어두고 말했다. “복불복(福不福)이네. 원하는 방에 들어가서 배필을 취하게.” 이번에는 한 무리의 모기떼가 날아와 목도령의 귓가에 속삭였다. “동쪽 방으로! 엥글당글.” 이렇게 해서 목도령은 할머니의 친딸과, 구조된 청년은 하녀와 맺어졌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이 두 쌍의 부부의 자손이라고 한다. 홍수는 신세계를 열망하는 신화적 상징이다. 그런데 어찌하리, 그 신세계도 짝패의 세상인 것을. <끝>

최원오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