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새해 특집] [탈출! 인구절벽/1부]<1>무너지는 ‘허리인구’
5년 차 증권맨 한성환 씨(34)는 2년째 결혼을 미루고 있다. 신혼집을 구할 자금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씨는 평균 연봉 약 4500만 원을 받으며 5년 동안 8000만 원가량을 모았다. 하지만 근무지인 여의도 주변 인기 주거지(서울 마포구, 양천구)의 20평대(66m² 이상) 아파트 전세금은 4억 원 이상이라 꿈도 꾸지 못했다.
서울 강서구, 경기 김포시, 경기 고양시 등 외곽으로 눈을 돌려도 20년 넘은 아파트의 전세금이 3억 원 가까이 됐다. 무리해서 2억 원 이상 대출을 받을까도 생각했지만, 이자만 50만 원(시중 금리 3%) 이상에 원금 상환까지 부담하며 살 자신이 없었다. 정부가 공급하는 신혼부부용 임대주택으로 눈을 돌려보지만, 소득이 높아 지원 자격조차 되지 않는다. 한 씨는 “중견기업에 다니는 청년들도 정부 지원에 기댈 수 없는 처지다”라면서 “무리해서 대출을 받거나, 결혼을 미룰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가 저출산 정책의 목표를 ‘결혼 빨리 시키기’로 전환한 것 자체에는 긍정적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책에 투입된 재원의 총량이 적어 청년들이 결혼을 결심하게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혼을 막는 제1 장애물인 주택 마련을 지원하는 정책들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행복주택, 국민임대주택 등 시세보다 저렴한 주택 13만 채를 확충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원 자격이 엄격해 중견기업 이상 다니는 맞벌이 부부는 지원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경쟁률이 200 대 1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은 행복주택의 경우 맞벌이 부부가 월 소득 456만 원 이상이거나, 약 2500만 원 이상의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으면 지원할 수 없다.
일반 주택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신혼부부 전세자금 저금리 대출 한도를 당초 1억 원에서 1억2000만 원까지 올렸다. 하지만 지난해만 서울 지역 전세금이 평균 5000만 원 오른 상황에서 체감 효과가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출산 특구’ 전국에 10개 조성
주택 마련의 문턱을 낮추지 않는 한 ‘합계출산율 1.5명’이란 정부 목표는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주택 걱정 없고, 각종 세제 혜택까지 주는 ‘출산 특구’를 전국에 최소 10곳 이상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출산 특구는 2016년부터 5300호가 공급 예정인 ‘행복주택 신혼부부 특화 단지’를 확대 개편하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사업이다. 행복주택은 기존 임대주택지보다 교통 여건이 좋은 서울 오류, 경기 하남 미사, 성남 고등, 과천 지식, 부산 정관 등에 설립될 예정이라 신혼부부에게 인기가 높다. 경쟁률이 200 대 1에 이를 정도다. 주택 건설 예정지 주변에는 국공립어린이집, 어린이도서관, 장난감놀이방, 등하굣길 폐쇄회로(CC)TV, 자녀 안심 자전거길, 차 없는 보행로, 단지 내 쌈지농장 등 아동 양육 친화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주변 시세의 60∼80%라 부담도 적고, 출산하면 최대 10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신혼부부 특화단지의 총량을 10배 이상 늘려 출산 특구로 지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도 혜택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확대돼야 실제 결혼과 출산율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조명래 단국대 도시기획계획과 교수는 “현재 전체 주택 중 임대주택 비율이 2% 수준인데 10배 가까이 늘려야 청년층이 체감할 수 있다”며 “정부는 재원 문제로, 민간 업자는 수익 문제로 임대 주택 확대를 꺼리고 있는데, 정부가 과감하게 결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신혼부부 특화단지를 10배 늘리려면 약 4조 원의 재원이 필요한데 국민연금기금을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며 “출산 특구가 활성화되면 양질의 공공 일자리도 창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佛 미혼모 보호정책, 저출산 극복에 한몫 ▼
혼인여부 관계없이 양육 지원… 출산율 21년새 1.65→2.08명
‘1.21명 vs 2.08명’.
2014년 한국과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 비교다. 1993년에는 두 나라가 1.65명으로 같았지만 21년 만에 배 가까이로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혼외출산이 사회적·제도적으로 차별받지 않도록 배려한 프랑스의 정책을 결정적 이유로 꼽는다.
프랑스에서는 자녀를 양육하고 있다는 사실만 입증하면 동거 남녀도 법적 부부와 똑같이 자녀 수에 따라 영유아 수당과 가족 보조금, 육아휴직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혼외출산과 법적 부부의 출산을 구별하는 가족법 규정을 2006년 폐지한 데 따른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2000년대 초 이미 혼외출산 아이의 수가 법적 부부의 신생아 수를 앞질렀다.
한국의 혼외출산 비율은 2012년 기준 2.1%로 프랑스(55%)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8.7%)에 크게 못 미친다. 지난해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성인 3085명을 상대로 설문한 결과 2477명(80.3%)이 “의료보험 혜택과 양육 수당을 미혼모 가정에도 똑같이 줘야 한다”고 답했다. 미혼모에게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한 응답자는 2520명(81.7%)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미혼모에게 지원하는 자녀 양육비는 월 최대 15만 원이고, 의료비는 2만4000원이다. 24세 이하 미혼모의 자립을 돕는 여성가족부 ‘한부모 자립지원비’ 예산은 2010년 120억8000만 원에서 지난해 23억300만 원으로 크게 줄었다. 임산부를 진료할 때 혼인 여부를 묻거나 배우자 등록을 요구하지 못하게 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해를 넘겨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박영미 한국미혼모네트워크 대표는 “가족 형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제도와 사회 인식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열쇠”라고 말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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